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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에 부는 평화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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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중동에 다시 평화가 깃들게 될까. 조심스럽긴 하지만 대답은 '예스'다. 여기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중동지역과 국제적 분위기가 모두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협상도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중동평화에 가장 중요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협상은 한 사건과 사태 전개 과정 두 가지 면에서 큰 변화를 맞고 있다.

이 사건이란 바로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의장의 사망이다. 그리고 그의 사망은 절묘하게도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재선과 동시에 일어났다. 부시 대통령은 아라파트의 사망이 중동평화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간주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가자지구 2차 봉기 이후 지난 4년 동안 계속된 충돌과 대립으로 양국 국민이 너무도 지쳐 있다는 점도 중동평화에 긍정적 요소다. 팔레스타인은 봉기 이후 전략적.도덕적 파국을 맞았고 자치정부는 무력해 이스라엘과의 휴전을 갈망하고 있는 상황이다. 새로운 팔레스타인 지도자 모하메드 압바스는 아파라트의 후계자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그는 아라파트의 뒷일을 청소하는 지도자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도 자신의 비전과 결단력을 요구받고 있다. 그는 이스라엘의 국부인 다비드 벤구리온까지는 아니더라도 평화의 전도사로 역사에 기록되길 원한다. 샤론은 전략적 차원에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영토를 양보해야 하며 이것이 바로 유대인의 정신을 되살리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사실 샤론이 평화 정착을 위한 정책 변화를 꾀함으로써 이번에 재개된 중동 평화회담의 성공 가능성은 상당히 커졌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인간이 역사를 바꾸지만 그들이 만든 역사가 어떤 것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은 본의 아니게 헤겔의 말을 따르고 있다. 그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을 몰아냈지만 아직 이라크 국민에게 민주주의를 선사하진 못했다. 그러나 그는 중동 전 지역에 정치적 변혁을 실현시켰다. 아프가니스탄 총선 이후 팔레스타인과 아랍세계에는 시민사회가 출현했고 이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미래에 대한 발언권을 원한다. 이것은 민주주의로 가는 과정이다. 민주주의가 정착되면 수니파가 주도하는 중동지역 각 정권의 행보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고, 이는 곧 중동지역 전역으로 전파될 것이다. 지금까지 수니파 정권들은 이스라엘과 아랍의 갈등을 자국의 정치.사회.경제적 개혁을 거부하는 구실로 활용해 왔다. 그러나 9.11사태 이후 아랍세계는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이스라엘과 아랍 대결 구도 종식을 강력히 원한다. 갈수록 거세지는 중동 내부의 폭력사태가 자신들의 정권에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국제적 관점에서 보면 중동의 새로운 사태 진전은 유럽의 대미관계 설정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이라크 총선 이후 유럽 각국은 새로운 교훈을 얻었다. 그것은 미국과 이라크 전쟁 발발시 미국에 협력을 반대한 것과 이라크 재건을 위해 이라크의 신정부를 돕는 것은 별개라는 교훈이다. 중동평화 정착을 위해 미국과 유럽, 특히 프랑스는 라피크 하리리 레바논 전 총리 암살 이후 시리아군의 레바논 철수를 위해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다. 중동에서 미국과 유럽의 의견차이는 이란 핵문제가 유일하다. 물론 아직 낙관하긴 이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는 아직 중도파가 정권을 잡고 있어 극단주의자들이 언제라도 평화를 위협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지역 대다수 주민은 오랜 전쟁에 지쳤고 지금까지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 그래서 그들은 평화를 강력히 원하고 있다. 중동평화에 낙관론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

정리=최형규 기자

도미니크 모이시 프랑스 국제관계연구소(IFRI)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