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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바이코리아 - 2005년 적립식펀드… 달라진 펀드 열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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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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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4월 21일 서울 압구정동 현대백화점에서 열린 바이코리아 펀드 투자설명회. 500여 명의 주부들이 모인 가운데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은 "어려운 시절 나라를 구한 것은 여성입니다. 바이코리아 펀드에 투자해 기업을 구합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 회장은 당시 700대였던 종합주가지수가 2005년 6000선까지 오를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 장면 2

지난달 23일 세이에셋운용은 세 종류의 고배당 펀드 판매를 중단했다. 8일 만에 2500억원이 몰렸기 때문이다. 이 회사 김원일 이사는 "중소형주에 주로 투자하는 배당주 펀드의 특성상 자금이 너무 많으면 오히려 효율성이 떨어지고 위험 관리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판매 중단이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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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드 투자 열풍이 불었던 99년과 현재의 주식 간접투자 시장의 분위기는 이처럼 크게 달라졌다. 근거 없는 낙관론으로 고객을 끌어들이던 시대에서 효율적인 펀드 운용을 위해 수탁액을 관리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또 펀드에 돈을 넣으면 단기간에 수십 배의 수익이 보장되는 것으로 오해했던 투자자들도 장.단기 수익률을 비교하고 펀드를 선택할 정도로 신중해졌다.

◆달라진 펀드 시장=99년 3월 바이코리아 펀드는 가계 자금을 싹쓸이하며 출시 13일 만에 설정액이 1조원을 돌파했다. 투신업계 전체의 주식형.혼합형 펀드 수탁액도 99년 초 10조원대에서 이듬해 70조원대로 불어났다. 그러나 2000년 말 주가지수가 하락하면서 6개월여 만에 20조원이 빠져나갔다.

반면 최근 펀드 투자액은 꾸준히 매월 5000억~1조원씩 늘어나고 있다. 정기적으로 일정액을 붓는 적립식 펀드가 100만 계좌를 넘어서면서 안정적으로 자금이 유입되는 모습이다. 그만큼 자금이 급속히 빠져나갈 우려는 크지 않다.

펀드를 평가하는 회사의 등장도 투자 환경 변화에 큰 몫을 했다. 6년 전에는 운용사의 과거 실적을 알아볼 수 있는 자료가 거의 없었지만 지금은 손쉽게 운용사별 수익률을 비교해 볼 수 있게 됐다. 과거 정보가 부족해 몇몇 스타 금융인의 명성을 좇아 펀드에 가입하던 투자자들이 수익률과 운용 규모 등을 꼼꼼히 따지며 펀드를 고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정보 공개 확대는 펀드의 투명성도 높였다. 펀드매니저 몇 명에 의존했던 운용 방식도 위험 관리와 종목 분석을 하는 팀을 따로 둘 정도로 조직화됐다.

◆장기투자 정착이 관건=부침이 있었지만 99년 이후 꾸준히 펀드 투자를 해 온 투자자들은 상당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바이코리아 펀드에서 이름을 바꾼 'Pru나폴레옹 주식 2-1호'는 누적수익률이 167.1%에 이른다. 바이코리아 펀드와 함께 펀드 열풍을 주도한 미래에셋의 펀드들도 장기 누적수익률이 200%대다.

전문가들은 펀드 시장이 확실히 자리를 잡으려면 장기 투자자층이 더 두꺼워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제로인의 이재순 비계량평가팀장은 "투자자들의 인식이 많이 바뀌긴 했지만 여전히 증시 상황에 따라 펀드 투자가 들쭉날쭉한다"며 "장기적인 가계 자산 운용의 일환으로 펀드를 받아들이는 관행이 정착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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