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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믿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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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소녀에게 오빠는 ‘어린 아빠’였다. 오빠의 어원도 이르거나 미숙함을 의미하는 ‘올’에 아버지란 뜻의 ‘압’이 결합된 것이라 한다. 여기에 호격(呼格) 조사가 붙은 ‘올+압+아’가 오라버니, 명사형 어미가 붙은 ‘올+압+이’가 오라비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19세기만 해도 ‘옵바’로 쓰였으나 20세기 들어 ‘오빠’가 됐다는 게 정설이다. 그래서일까. 오빠의 이미지에 그리움과 애틋함, 듬직함이 중첩된 것은.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로 시작하는 동요 ‘오빠 생각’은 1925년 11월 ‘어린이’에 실렸다. 작사자는 당시 11세였던 최순애다. 비단 구두 사가지고 오겠다던 오빠는 기러기 오고 귀뚜라미 우는데도 소식이 없다는 내용이다. 어쩌랴. 일본의 학정(虐政)과 수탈(收奪)이 기승을 부리던 때인 것을. 그래서 말 타고 서울 간 오빠는 독립운동하는지, 돈을 버는지, 공부하는지 알 수가 없다. 연극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는 1936년 초연됐다. 원제는 ‘홍도야 우지 마라’다. 오빠의 학비를 벌기 위해 기생이 된 홍도의 기구한 운명이 줄거리다. 이런 ‘홍도’는 급속성장의 그늘에서 룸살롱으로 무대가 바뀌지만.

 이랬던 오빠는 남진과 나훈아를 거쳐 조용필 시대에 선망과 연모의 대상으로 정착한다. “기도하는…”에 “꺅~” 하고 비명을 지르는 ‘오빠부대’가 탄생했다. ‘S 오빠’에서 ‘아는 오빠’를 거쳐 이제는 그냥 ‘오빠’라고 부르는 시대다. “하나씩만 낳아도…” 하는 가족계획 때문인가. 진짜 오빠가 귀해진 것이다. 그래서 대학 선배도, 직장 선배도 오빠다. 전후맥락을 살펴야 진짜 오빠인지, 선배인지, 연인인지 알 수 있는 상황이다.

 최근 ‘오빠 믿지?’라는 위치기반의 스마트폰 앱(애플리케이션)이 화제다. 앱을 설치하고 서로 등록하면 상대의 위치가 지도 위에 실시간으로 뜬다. “어디야?” 물어볼 필요가 없다. 출시하자마자 폭발적인 관심에 서버가 다운됐다. 벌써 알리바이 앱도 나왔다. 휴대전화를 급속히 방전시켜 “꺼진 줄 몰랐네~”라고 변명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커플용 전자발찌다, 사생활 침해다 여론이 분분한 가운데 이 앱이 뜻밖에 학부모에게 인기라고 한다. 자녀가 학원에 잘 다니는지, 도서관에 있는지, 혹시 옆길로 새지 않았는지 감시하기 위해서란다. 오빠가 아니라 ‘엄마 믿지?’로 용도전환인 셈인가. 인간의 역사는 자유가 증진돼 가는 역정이라는데, 기술발전에 갈수록 자유를 박탈당하는 느낌이다.

박종권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