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 부드러운 터프 가이 ‘걸오 스타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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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면

남성 스타일 중 가장 오해가 많은 게 ‘터프함’이다. 헝클어진 머리, 덥수룩한 수염, 되는 대로 걸쳐 입은 옷, 무심한 언행…. 대략 터프함은 이렇게 요약된다. 그러다 보니 이를 무식하고 사나운 마초 스타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터프함이 남성적 매력으로 승화하려면 한 끗이 더 필요하다. 최근 가장 터프한 매력의 사나이로 떠오른,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의 걸오(유아인 분·사진)는 스타일로 터프함을 완성한 대표적인 사례다. 헝클어진 듯 보이는 머리는, 실은 엉킨 데 없이 컬의 각도와 볼륨까지 살려낸, 손이 많이 간 스타일이다. 옷은 각을 잡지 않고, 그대로 흘러내리는 부드러운 차림새다. 그의 스타일은 옷이 부드러우면 유약해 보일 것이란 생각을 단번에 깨부순다. 이런 ‘걸오표 패션’은 조선시대가 배경이지만, 실제로 최근 남성복 트렌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각진 어깨와 스키니핏의 시대가 저물면서 곡선과 풍성한 볼륨을 강조한 옷들이 쏟아지고 있다. 부드러움과 공존하는 터프한 남성복 경향을 걸오 스타일을 통해 풀어봤다.

글=이도은 기자 사진=각 브랜드 제공

늘어지는 걸오 패션, 남성복 트렌드로

걸오의 옷은 똑 떨어지지 않는다. 속은 단정하게 입더라도 겉옷 뭐 하나는 늘어지게 걸친다. 넉넉한 옷들을 자연스럽게 겹쳐 입으면서도 시선을 분산시키는 장신구 하나 없다. 한복인데도 아방가르드하다.

올 가을·겨울 남자옷 컬렉션도 이와 비슷하다. 랑방 옴므는 코트의 가슴 절개마다 드레이핑을 잡아 흘러내리는 듯한 여유를 만들어냈고, 길이도 바닥을 쓸 정도로 길게 뺐다. 3.1 필립림의 모자 달린 니트는 넉넉한 품에 길이도 무릎 위까지 늘려 보는 사람이 나른해질 정도. 또 버버리 프로섬은 여성복에서나 볼 수 있었던 늘어지는 롱 카디건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전체 실루엣이 넉넉해지면서 어깨선은 둥글어지고 소매·바지도 덩달아 여유가 생겼다. 특히 스키니 라인의 제왕이었던 디올 옴므가 바지통을 넓힌 것은 일대 변혁이다. 입생로랑은 한 발 더 나아가 엉덩이가 축 처지는 할렘 팬츠를 등장시켰다. 여기에 버클 벨트 대신 끈으로 여민 재킷(3.1필립림), 일부러 밑단을 두 겹으로 겹친 코트(디올 옴므)도 걸오를 떠올리게 하는 옷들이다.

“날것으로 살고 싶은 남성성의 회귀”

1 허벅지를 덮는 롱카디건이 남성복에도 등장했다. 버버리 프로섬. 2 풍성해 보이는 니트에 호피무늬로 포인트를 줬다. 3.1 필립림. 3 늘어지는 카디건 위에 베스트를 겹쳐 입어 마치 ‘걸오’가 런웨이에 선 듯하다. 송지오 옴므. 4 부드러운 남성복에선 반듯한 칼라도 생략된다. 릭 오웬스. 5 드레이핑을 잡아 흘러내리듯 여유로운 코트. 디올 옴므. 6 스키니진 대신 통을 넓히고 엉덩이가 처지는 바지도 선보였다. 입생로랑.

“다른 유생들보다 걸오의 옷은 더 볼륨감을 줬어요. 틀에 갇히지 않은, 야생마 같은 캐릭터를 표현했죠.” ‘성균관 스캔들’의 이진희(옛의상 스튜디오 대표) 의상 감독의 설명이다.

최근 넉넉해진 남자옷에 대한 해석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삼성패션연구소 김정희 팀장은 ‘날것에 대한 욕망’ ‘편안한 남성성의 회귀’로 이를 요약했다. 경제 불황, 빠르게 변하는 첨단 기술 등에 지친 남자들이 이젠 ‘있는 그대로’의 옷을 원하게 됐다는 것. 그래서 “겉으로는 여성적으로 보이지만 오히려 남자의 야성이 더 녹아든 옷”이라는 게 김 팀장의 설명이다. 실제 승마(3.1 필립림)·등산(발리) 등 아웃도어에서 모티프를 얻는 디자인이 많아진 게 사실. 부드러운 남성복의 뿌리가 ‘야생’임을 입증해준다. 여기에 하나 더, 스키니룩에 대한 반감도 작용했다. 지금까지 몸을 조이는 옷은 날씬해져야 한다는 압박, 몸을 드러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다. 이제 자신을 옥죄는 어떤 구속으로부터도 해방되고 싶다는 수컷들의 욕망이 부드러운 옷의 트렌드를 이끌어낸 셈이다.

슈트에 스카프 하나로 소프트 감성을

넉넉해진 남성복, 오히려 더 전략적이어야 한다. 무조건 펑퍼짐하게 입었다간 남의 옷 얻어 입은 꼴이다. 외투보다는 늘어짐이 자연스러운 저지 소재 티셔츠나 품이 넉넉한 카디건이 안전하다. 이때도 소매 길이는 꼭 맞아야 전체적으로 크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또 검정·흰색의 강한 대비는 피할 것. 파스텔톤까지 고를 필요도 없이 감색·회색·카멜색 정도면 충분히 ‘감미롭다’. 굳이 옷이 아닌 액세서리만 더해도 좋다. 스카프가 일등공신이다. 슈트를 입고도 포켓 스퀘어 대신 꽂는다거나 타이 대신 매면 된다. 캐주얼 차림에 여자들처럼 한 손에 잡히는 클러치를 드는 방법도 있다.

그렇다면 옷장 속 ‘각 잡힌 센 옷’들은 묵혀둬야 할까. 최혜련 패션스타일리스트는 “참하고 무난한 아이템과 짝지으라”고 조언한다. 일단 버클·스터드 장식이 많은 점퍼·재킷에 해골 프린트 셔츠는 NG. 같은 톤의 셔츠나 니트, 브이넥 니트 안에 셔츠를 받쳐 입는 전통 클래식으로 짝짓는다. 야상점퍼도 마찬가지. 빈티지 워싱 셔츠를 입으면 3박4일 끄떡없는 ‘야생룩’이 될 터지만 아이보리색 터틀넥이나 아가일체크 브이넥 니트로 프레피룩 분위기를 낼 수 있다. 강도가 높은 가죽 바이커재킷은 바지의 기운부터 죽일 것. 늘 입는 블랙진보다 줄무늬 면바지나 아예 통이 넓은 모직바지를 입으면 모던 보이로 변신할 수 있다. 재킷 안에도 무늬 없는 티셔츠나 니트를 입어 주는 게 센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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