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브도어, 후지산케이 겨냥 주식매입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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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일본의 인터넷 벤처기업과 미디어 재벌 간의 주식 쟁탈전이 일본 내에서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32세의 젊은 CEO 호리에 다카후미(堀江貴文)가 이끄는 인터넷 포털 업체 라이브도어가 후지산케이그룹의 지주회사인 닛폰 방송 주식을 매집한데서 촉발된 주식 게임은 적대적 인수합병(M&A) 규제 등을 놓고 정책 논쟁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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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석화 매집 작전=호리에 사장은 지난달 8일 기자회견을 열고 "닛폰 방송 주식의 35%를 매집했다"고 전격 발표했다. 라디오 방송사인 닛폰방송은 일본 상업방송의 대표주자인 후지TV의 최대 주주다. 그는 "인터넷과 방송을 결합한 사업을 펼치겠다"며 후지TV의 경영에도 관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연매출 300억엔대의 라이브도어의 매수전략에 대해 업계는 '새우가 고래를 삼키려는 격'이라고 비유했다.

주식 매집은 도쿄 증시 개장 전 28분 만에 시간 외 거래로 이뤄졌다. 자금은 외국계 업체인 리먼브러더스에 800억엔의 전환사채를 발행해 조달했다.

닛폰방송과 후지는 독약 처방으로 맞섰다. 닛폰방송이 신주를 발행하고 신주 인수권 4720만주를 후지TV에 할당해 라이브도어의 지분율을 낮추기로 결의한 것이다.

라이브도어는 이에 대해 "후지TV를 제외한 나머지 주주의 주식 가치를 떨어뜨리는 불공정 행위"라며 법원에 신주발행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시장 내에선 '포이즌필'('독약조항')이라 불리는 신주인수권 우선 배정조치가 적대적M&A 시도에 맞서는 사전 대응책으로는 인정할 수 있지만 이번 경우처럼 매집 직후에 이뤄진 증자는 불법이란 견해가 우세하다.

◆들끓는 논쟁=최근까지 여론은 라이브도어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변칙 거래로 증권시장의 질서를 흔들어 놓았다는 지적 때문이다. 그러나 라이브도어 측은 닛폰 방송 주식 매집이 위법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당시 거래가 도쿄 증시의 전산시스템 내에서 이뤄져 외형적으론 장내거래이기 때문에 장외거래에만 부과되는 사전 공개매수선언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장기업의 경영권이 오가는 거래를 일반 주주가 모르는 사이에 할 수 있느냐"는 지적이 따갑다. 일본 금융청도 부랴부랴 미비한 관련 법규정을 고치겠다고 밝혔다. 외국계 자본을 이용해 공공성이 강한 방송사의 경영권을 노린 점도 도마 위에 올랐다. 리먼브러더스가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바꿀 경우 라이브도어를 통해 닛폰방송과 후지TV를 간접 소유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리먼브러더스 측은 "방송사 경영에는 관심이 없고 순수한 투자 차원에서 자금을 제공했다"고 해명했다.

이번 파문을 일본식 전통과 서구식 경영기법의 대립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요미우리 신문 등은 "주주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미국식 기업관과 종업원.소비자들의 이해관 및 종업원사회적 책임을 함께 중시하는 일본식 기업관의 마찰"이라고 분석했다. 도쿄전력.고단샤 등 닛폰방송의 다른 주주들이 후지TV에 지분을 넘겨 라이브도어의 지분 확대를 막겠다고 공조의사를 밝힌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여론의 화살을 맞고 있는 호리에는 "일본의 주식 거래와 기업 관행 시스템은 바뀌어져야 한다"며 "정당하게 주식을 소유해도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면 누가 투자하겠느냐"고 반론했다.

도쿄=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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