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람] "곁에서 돌봐줘 감사합니다" 보은의 피아노 연주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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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함께하는 동료 환자와 직원들에게 멋진 연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3일 오후 3시30분 경기도 용인시 기흥읍 하갈리 삼성노블카운티 생활문화센터 국제회의실(350석)에서는 이색 음악회가 열린다. 1년 전 폐암과 대장암 선고를 받고 이곳 너싱홈(만성 질환으로 고생하는 노인들을 위한 요양시설)에 입주한 김동성(80) 전 공보부 장관(1963~64)이 주인공이다. 그는 수십년 전에 접었던 피아노 실력을 발휘해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와 쇼팽의 '즉흥 환상곡' '군대 폴로네이즈' 등을 연주하고, 구수한 해설까지 곁들일 계획이다.

"잘난 척 한다는 말을 들을까봐 걱정도 되지만 약속은 지켜야지요. 아직도 이웃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니 기쁘기 한량 없습니다."

그에게 독주회를 제의한 사람은 담당 간호사인 정선희씨. 지난해 가을 직원 식당 옆방에서 혼자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고 있는 김씨를 보고 "솜씨가 범상치 않은 것 같은데 정식으로 연주를 한번 해달라"고 졸랐다. 김씨는 "만약 입주 1주년 되는 날까지 살아 있다면 그때 기꺼이 독주회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이번 공연시간도 이곳에 휠체어를 타고 들어왔던 1년 전 그날, 그 시각으로 정했다.

"피아노를 벗삼아 지내다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겠고, 건강도 많이 좋아졌어요. 본격적으로 피아노를 배우던 20대 시절로 되돌아간 기분입니다."

서울대.명지대 교수, 주 아르헨티나 대사, KBS 교향악단 총감독을 지낸 김씨는 서울대 사대 영어과에 다닐 때 피아니스트 김형근(1912~75)을 사사했다.

도쿄예대를 졸업한 김형근 선생은 정순빈 줄리아드 음대 교수, 조삼진 전 건국대 교수를 가르쳤던 사람이다. 김씨는 '음악실 귀신'이라는 별명까지 얻을 정도로 열심히 연습했고 피아니스트로 방송에 출연해 학비를 벌기도 했다.

1956년 경기여고 강당에서 독주회를 열어 피아니스트로 공식 데뷔한 후 50년대 말까지 바이올리니스트 계정식, 첼리스트 김종명과 함께 '아카데미 트리오'로 활동했다. 국방부 장관 보좌관으로 있으면서 경희대 피아노과에 출강하기도 했다. 60년대 후반 동양방송(TBC)에서 매주 목요일 오후 10시부터 방송됐던 '클래식 모던'의 MC를 4년간 맡았고 KBS 라디오에서 클래식 해설자로도 이름을 날렸다.

글.사진=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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