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2: 1882년 4월 30일, 검찰사 이규원을 대표로 하는 102명 규모의 조사단이 울릉도에 도착했다. 7일간 도보, 2일간 배로 조사한 보고서에 이런 기록이 나온다. "일본인 78명이 벌목을 하러 침범해 있다. 항구에 '대일본국 송도(松島.독도)'란 커다란 나무 팻말까지 세워놨다."
#과거3: 숙종 22년인 1696년 동래 출신 안용복 등 16명의 어부가 울릉도로 갔다. 거기서 늘어선 일본 어선과 어부들을 보고 안용복은 "우리 땅에 감히 왜인이…"라며 꾸짖었다. 왜인들은 "우린 본래 송도(독도)에 사는데 고기 잡으러 왔다 이렇게 됐다"고 했다. 독도가 일본땅이란 것이다.
#과거4: 광해군 10년(1618년) 일본 도쿠가와 막부는 시마네현의 오다니와 무라가와 가문에 80년 동안 울릉도 도해 면허권을 내줬다. 당시 조선의 '섬 비우기(空島)정책'으로 울릉도는 텅 빈 상태였다. 그 틈을 타 섬에서 벌목하고 고기를 잡으라고 '도둑'허가를 내준 것이다. 그 과정에서 독도는 일본 배가 멋대로 들르는 '울릉도 착취의 전진기지'가 됐다.
이수광의 '지봉유설(芝峯類說)'에도 임진왜란 이후 수탈당하는 기록이 나온다.
신라 지증왕 때인 512년 이후 줄곧 우리의 땅이었던 독도에 대한 일본의 탐내기는 이처럼 집요했다. 오늘날에는 주한 일본대사가 서울 한복판에서 "독도는 일본땅"이라고 기자회견까지 벌이는 판이다. 그런데도 정부의 '독도 외교'는 물렁해만 보인다. "국제사법재판소로 가면 안 된다"며 갈등 확산을 막는 데 급급해하는 모양새다. 그런 미온적 태도가 오히려 한국령 독도에 대한 국제적 의심을 키우는 게 아닐지 걱정이다.
안성규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