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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50 문화도 대접받는 일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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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도쿄의 번화가인 롯폰기(六本木). 이곳은 아카사카·아오야마처럼 외국인 클럽이나 외국인들이 즐겨 찾는 음식점이 즐비한 곳이다. 2003년 롯폰기 힐스가 건설된 이후엔 문화·쇼핑·엔터테인먼트를 즐기려는 젊은이들의 거리로 탈바꿈했다. 밤이 되면 젊은이들이 몰리는 클럽에서 흘러나오는 J팝과 힙합·R&B 음악으로 거리가 떠들썩하다.

 얼마 전 지인의 소개로 롯폰기의 ‘켄토스’라는 클럽을 찾았다. 가게 한가운데 들어선 1950, 60년대 로큰롤 무대. 작은 탁자가 20여 개나 될까. 40~50대 샐러리맨과 중년 여성들이 삼삼오오 무대 앞에서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고 있었다. 엘비스 프레슬리처럼 올백으로 머리를 빗어넘긴 밴드 멤버들이 연주하는 곡은 엘비스 프레슬리와 폴 앵커, 닐 세다카 등 비틀스 이전에 등장한 올디스 벗 구디스다. 넥타이를 맨 50대 아저씨들이 무대 앞에서 정신 없이 트위스트를 추다가 밴드 연주에 맞춰 함성을 지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50년 전으로 되돌아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이 가게는 34년 전 세워졌다. 디스코 열풍이 전 세계를 뒤덮었던 80, 90년대, 한 집 건너 하나씩 디스코텍이 들어선 시절에도 켄토스는 건재했다. 오히려 올드팝 팬들에 의해 80년대 중반부터 전국 39곳에 분점을 냈다. 도쿄의 4050 아지트는 켄토스만이 아니다. 롯폰기 도쿄미드타운에 3년 전 문을 연 클럽하우스 ‘빌보드’ 역시 4050세대를 타깃으로 한 가게다. 켄토스 바로 옆에 있는 비틀스 음악만을 연주하는 ‘캐번스클럽’ ‘애비 로드’ 같은 라이브하우스도 연일 중년층 관객으로 가득 찬다.

 일상에 찌든 중년 남성이 춤을 통해 삶의 활력을 되찾는다는 내용의 90년대 영화 ‘쉘 위 댄스’는 이런 면에서 4050세대를 문화의 주류로 끌어올렸다고 평가할 만하다. 주말엔 골프, 퇴근 후엔 노래방으로 이어지는 삶 속에서 취미생활은 은퇴 후로 미뤄뒀던 40~50대 중년층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서예나 요리·음악·춤·어학공부 같은 다양한 분야의 공부를 시작한 4050 세대가 크게 늘어났다.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전문잡지들이 창간된 것도 이 무렵이다.

 일본이 저출산 고령화사회로 진입한 시기와 맞물려 일본의 전체 산업도 중·장년층을 소비 타깃으로 삼고 있다. 80, 90년대 어린이용 게임으로 성장한 닌텐도가 50~60대 중·장년층을 겨냥한 게임 프로그램들을 개발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가난했던 부모 세대와 달리 일본의 고도 경제성장기에 태어나 다양한 문화를 경험한 이들 세대가 시장의 수요층으로, 그들의 놀이문화가 사회의 엄연한 주류문화로 대접받고 있는 것이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일본의 중년 아줌마·아저씨들이 주위 눈치 안 보고 20~30대와 함께 스타에 열광하고 취미생활을 즐기는 모습을 보면 확실히 문화를 소비하는 대중의 층이 한국보다 넓고 깊다는 것을 느낀다. 자식 키우랴 부모 봉양하랴, 그 어느 세대보다 고달픈 한국의 4050세대의 현주소가 가슴 아프다.

박소영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