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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대통령의 인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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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김환영 중앙SUNDAY 지식팀장

“다른 박사과정 학생들은 옳은 존재가 되려고 했지만 그는 옳은 해답을 얻으려고 했다.” 최근 624m 지하에 매몰된 33인의 광부 구출을 성공적으로 진두지휘해 세계적인 스타 지도자로 각광받고 있는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에 대한 평가다. 이런 평가를 내린 사람은 보스턴대 로렌스 코틀리코프 교수다. 코틀리코프 교수는 지난 8월 “미국은 이미 파산했다. 우리가 아직 그것을 모르고 있을 뿐”이라고 미국 경제를 진단해 화제를 모았다. 그는 1976년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피녜라 대통령과 함께 공부할 때 라이벌이었다고 한다.

 피녜라 대통령은 이번에 신속한 정책결정, 동원 가능한 모든 국내외 자원의 효율적인 투입으로 위기관리의 ‘교과서’를 썼다는 평가를 받게 됐다. 특히 광산 매몰 위기 수습으로 지지율 56%로 10%가량 상승했다.

 하지만 피녜라 대통령의 ‘행복’은 다른 나라 지도자들에겐 ‘불행’이었다. 그의 이번 업적을 깎아 내리려는 시도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컨대 오메르 딘체르 터키 노동부 장관은 13일 “구출에 69일 걸린 것은 너무 오래 걸린 것”이라며 “터키에서 비슷한 사고가 발생했다면 3일이면 해결됐을 것이다”고 주장했다.

 대부분의 언론 매체나 블로거들은 피녜라 대통령 사례를 인용해 자국(自國) 정치권과 지도자를 공격했다. 몇 년 된 사고도 새삼 문제가 됐다. 멕시코에선 2006년 2월 19일 파스타 데 콘초스 광산 사고로 65명의 광부들이 사망했다. 멕시코 광산노동조합은 지난 14일 멕시코 정부 비난 성명을 발표해 “칠레 정부의 노력은 파스타 데 콘초스 참사 당시 멕시코 정부와 업계의 무자비한 반(反)사회적 행위에 대한 도덕적인 단죄”라고 주장했다. 러시아의 네티즌들은 2000년 8월 12일 쿠르스크호 침몰로 잠수함에서 근무하던 승조원 118명 전원이 사망한 것을 떠올렸다. “무슨 일이 발생했는가”라는 질문에 당시 푸틴 대통령은 “침몰했다”고 짧고 ‘무성의한’ 답변으로 반대파를 자극한 바 있다.

 미국의 언론과 네티즌들은 허리케인 카트리나와 멕시코만 원유 유출 사고에 늑장 대응한 조지 부시 전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도마에 올렸다. 이 두 사건으로 부시와 오바마는 각기 10%, 7%의 지지율 하락을 겪은 바 있다. 특히 대선 공약의 70%는 달성했다고 주장하는 오바마 대통령은 칠레 광산 매몰 사고 수습으로 아물어 가던 상처가 다시 열리게 됐다.

 미국의 경우 34명의 광부가 2009년 사고로 사망했다. 중국에선 같은 해 2631명의 광부가 1616건의 사고로 사망했다. 2008년보다 18% 감소한 수치이기는 하다. 중국 당국은 16일 갱내 작업 시 간부 1명을 광부들과 함께 투입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지침을 발표했다. 하지만 중국 지도부와 칠레 대통령을 비교하는 중국 네티즌들의 분노가 표출되고 있다.

 세계는 이처럼 자국 지도자를 다른 나라 지도자들과 비교해 평가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새 시대는 각국 지도자들이 서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칠레로부터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칠레는 좌·우파 정부 모두 중도실용주의를 잘 실천하는 모범 사례로 유명하다. ‘옳은 존재’보다는 ‘옳은 해답’을 추구한다는 피녜라 대통령의 실용주의는 우리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많은 참조가 될 수 있다.

 북한 언론까지 현장 보도한 이번 칠레 사고는 세계에서 매년 1만2000명의 광부들이 각종 사고로 사망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칠레 사례는 또한 7000조원의 광물 자원이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의 광산 안전 실태에 대한 우려를 낳게 한다. 남한에는 일반 광산 4996개와 석탄광산 400개 등 모두 5396개의 광산이 있다. 칠레 사태는 북쪽을 걱정하기 전에 우리나라가 아직 ‘광산 안전 건강 협약(Safety & Health in Mines Convention)’의 미가입국이라는 사실도 우려하게 한다.

김환영 중앙SUNDAY 지식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