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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아빠는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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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타계한 소설가이자 번역가 이윤기씨는 2001년 『춘아, 춘아, 옥단춘아, 너희 아버지 어디 갔니?』라는 책에서 대학생 딸과 함께 문학과 신화, 일상의 삶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딸이 술 마시고 들어오는 것을 귀신같이 아는 아버지, 술에 취한 채 ‘(미국 유학을)너 안 가면 안 되겠니’라는 아버지의 말에 속이 미어지던 딸 등 애틋한 부녀의 정(情)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이씨는 어릴 적 읊조리던 우리 전래의 무가(巫歌)를 통해 자신의 부친에 대한 그리움도 내비친다. ‘춘아, 춘아, 옥단춘아, 너희 아버지 어디 갔니/우리 아버지 배를 타고 한강수에 놀러갔다/봄이 오면 오시겠지/봄이 와도 안 오신다/꽃이 피면 오시겠지/꽃이 펴도 안 오신다…’. 그리고 딸에게 설명한다. “한강수는 송장 추깃물이다. 건너올 수 없는 강이다. 내가 눈물 없이 이 노래를 불러낼 수 없는 까닭은 아버지의 되죽음을 송두리째 다시 경험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너도 먼 훗날, 눈물 없이는 이 노래를 불러내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아버지가 누구인가. 온갖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는 가장(家長)이요, 근심을 혼자 속으로 삭이며 남몰래 마음의 눈물을 훔치는 사람이 아버지상(像)이었다. ‘아버지의 마음’을 쓴 시인 김현승은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아버지는 어린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고 회상했다.

 많은 아버지는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때 구조조정 한파로 일터에서 밀려나면서 고개를 떨구었다. 자식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는 물고기의 본능에 아버지를 빗댄 소설 『가시고기』가 큰 인기를 끌었던 이유다. 그렇게 10년이 더 지난 지금 ‘외기러기 아빠’ ‘돈벌이 머신’ ‘하숙생 아빠’가 도처에 흩어져 있다.

 최근 TV 예능프로그램에 소개된 초등학교 2학년생의 ‘아빠는 왜?’라는 동시(童詩)가 삽시간에 퍼지면서 ‘화제’다. ‘엄마가 있어 좋다, 나를 이뻐해주어서/냉장고가 있어 좋다, 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강아지가 있어 좋다, 나랑 놀아주어서/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냉장고나 강아지만도 못한 존재로서 아빠를 바라보는 동심에 이 시대의 아버지들이 서글퍼하고 있단다. 일에 매달려 가정과 자식을 소홀히 한 아빠 탓인가, ‘강아지와 냉장고가 더 좋다’는 아이를 감싸고 돈 엄마의 탓인가.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다.

고대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