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교원평가제 시급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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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대입 부정과 내신 조작 등 각종 교육 비리들이 잇따라 터지고 있다. 이런 고질적 병리현상들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교직사회가 시대정신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근본적인 처방을 잘못한 데 책임이 있다. 그렇다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지름길은 없는가. 아니다. 나는 반복되는 불신의 악순환을 끊는 열쇠를 '교육의 질은 교원의 질을 넘어설 수 없다'는 말에서 찾는다.

교원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도덕적.법적으로 정당한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교사는 교직 입문 후 전문성을 높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근무가 가능하며, 교사의 자질.능력에 문제가 있더라도 이를 통제할 시스템이 미흡한 것이 현실이다. 교원평가제는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이 된다.

*** 교원의 질이 교육의 질 결정

교원평가제 도입의 당위성은 세계 여러 나라가 교원 전문성 향상을 위한 전략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확보될 수 있다. 미국과 영국은 1980년대부터 교원의 전문성 신장 및 책무성 향상에 목적을 두고 이를 승진.보수.연수 등을 결정할 때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모든 교원이 평가를 받으며 평가과정에는 본인.동료.학생.학부모 등 교육공동체가 참여하고 있다.

일본은 2000년 4월부터 도쿄(東京)를 기점으로 능력과 업적에 따른 새 평가시스템을 도입했다. 평가 결과는 인사이동과 보수, 연수는 물론 부적격 교사를 판단하는 데까지 활용하고 있다. 특히 2001년부터는 전문지식, 지도능력 및 학급경영능력이 부족한 교사는 특별연수를 받도록 해 학생의 학습권을 보호하고 있다. 새 제도 도입 후 지도력 부족 교사는 2000년 65명, 2001년 149명, 2002년 289명, 2003년 471명으로 늘어났다. 이들이 특별연수를 받은 만큼 교사들의 지도력은 향상된 셈이다.

한국은 1964년부터 교사의 근무성적평정(근평) 제도를 운용해 왔지만 불행하게도 교원의 전문성 신장에는 보탬이 되지 못했다. 정부는 수차례 제도 혁신의 의지를 표명했으나 교원단체의 반대로 실행되지 못했었다. 지난해 2월 교육부총리가 다시 교원평가제 도입 방침을 밝힌 뒤 본격적으로 검토되고 있다.

하루빨리 교원평가제가 교직사회에 도입돼야만 하는 이유는 많다.

첫째, 최근 들어 잦은 부정.비리사건으로 증폭된 국민의 공교육에 대한 불신을 해소해야 한다. 교직 정체성을 재정립해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사회적 인정과 신뢰를 담보할 수 있는 공개적인 검증장치로 교원의 전문성을 측정함으로써 자질 부족 교사에 대한 사회적 불신 해소가 절실하다.

둘째, 근평 제도는 교원승진 용도에 국한돼 '근평은 곧 승진'이란 등식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따라서 근평은 전체 교사에게 전문성 신장의 기회로 작용하기보다 승진에 관심 있는 일부 교사에게만 의미 있는 경쟁으로 작용하고 있다. 학생의 교육력 향상을 위한 경쟁이 아닌 교사만을 위한 경쟁으로 운영되면서 평가 자체를 부정하고 불신하는 풍토를 초래했다.

*** 교육불신 고리 끊는 최선책

셋째, 교과 전문성이 부족하거나 도덕적.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교사로부터 학생의 학습권이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 교사와의 잘못된 만남은 학생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정신적 상처를 안겨준다.

넷째, 교사의 승진과정에서 교감.교장의 평가 결과가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현실에서 교사는 관리자의 눈치를 살피게 되며, 이런 폐쇄적 평가체제는 공정성.신뢰성을 기대하기 어렵게 한다. 기존 체제를 개방적 체제로 전환해 교육공동체인 교사.학부모.학생이 참여할 수 있게 해 공정성과 신뢰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한국교육의 위기는 전적으로 교직계가 책임져야 한다. 교사들은 남의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교원들이 앞장서 스스로 변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줄 때 국민은 공교육에 대한 신뢰와 지지를 보낼 것이다. 이를 외면하거나 책임을 방기한다면 교육계의 앞날뿐 아니라 국가의 미래가 참담해진다는 것을 교사들은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전제상 경주대 교수.교육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