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아 아닌 자개아(自開兒)에 박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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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자폐 장애가 있는 아들보다 하루 먼저 죽는 걸 소원하던 엄마. 달릴 때만큼은 남들과 전혀 차이가 나지 않는 아들. 인간 한계의 상징인 마라톤으로 '정상과 장애'의 이분법을 넘어선 영화 '말아톤'이 26일 개봉 한 달 만에 관객 400만명을 넘어섰다. '장애인이 나오면 흥행에 마이너스가 된다'는 편견을 무너뜨렸고, 장애인에 무심했던 우리 사회를 반성하는 신드롬도 일으켰다.

'말아톤'을 제작.연출한 석명홍(47.사진(右)) 시네라인Ⅱ 대표와 정윤철(34.(左)) 감독은 "영화의 힘을 새롭게 확인했다"고 입을 모았다. 영화의 초원이처럼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그들은 "행복해서, 즐거워서 눈물이 나는 영화를 만든 게 가장 큰 성과"라고 말했다.

석씨는 지난 20여년 충무로에서 외화 2500여편을 마케팅하다가 4년 전 '친구'(전국 820만명)에 이어 대박을 터뜨렸으며, 정 감독은 성수대교 붕괴 등을 돌아본 단편 '기념촬영'으로 주목받다가 이번 장편 데뷔작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석명홍=장애인을 다룬 한국영화가 거의 없었다. 배창호 감독의 '안녕하세요 하나님' 정도 기억난다. YMCA 청소년 추천영화, 안 봐도 본 것 같은 영화가 되지 않도록 유의했다.

▶정윤철=처음부터 사회적 파장이 있는 영화를 생각했다. 또 사회에 희망을 주려고 싶었다. 영화로나마 '살맛 나는 세상'을 그리려고 했다.

▶석='친구' 때는 모방 살인극도 생겨 마음이 불편했으나 이번에는 '고맙다''잘봤다'는 격려가 많다. 폭력이 넘쳐나는 시대에 '말아톤'은 순수에 대한 그리움을 건드린 것 같다.

▶정=불우한 환경을 극복하는 인간 승리극에 그치지 않도록 신경 썼다. 자기 꿈을 실현해가는 한 젊은이의 성장 드라마라는 보편성을 담으려고 했다. '포레스트 검프''레인맨' 등의 복제품이란 소리를 들을 순 없었다.

▶석=공감의 코드가 많은 영화다. 장애인 아들을 홀로 서게 하려는 초원이 엄마와 자녀를 서울대에 보내려는 보통 엄마가 다를 게 있나. 영화의 주제는 자립이다. 마지막 엄마 손을 놓고 달려가는 초원이가 키포인트다.

▶정=실제 모델이 있었으나 캐릭터 구축이 어려웠다. 영화는 갈등이 있어야 하지 않나. 그런데 그게 편견이었다. 1년 반 넘게 함께 지냈으나 초원이는 갈등을 몰랐다. 자기감정에 솔직할 뿐이었다. 자폐아가 아닌 자개아(自開兒)를 발견하자 실마리가 풀렸다.

▶석=감독이 시나리오를 10번 고쳐 썼다. 초원이 얘기로는 한계가 뚜렷했다. 엄마와 코치 등 주변 인물을 입체적으로 그려내자 영화가 힘을 받았다. 말장난식 코미디가 아닌 상황 자체에서 웃음과 울음이 교차한다. 아이들은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처럼 깔깔대고, 부모들은 가슴을 쓸어내린다.

▶정=초원이는 내내 그대로다. 다만 엄마와 코치가 변한다. 그리고 관객이 성장한다. 영화는 결국 이야기다. 규모나 장르는 부수적이다. 관객 자신의 얘기처럼 다가오는 정통 드라마가 부족했던 게 성공 요인인 것 같다.

글=박정호 기자<jhlogos@joongang.co.kr>
사진=변선구 기자 <sunni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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