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생명 24층 펜트하우스 … 이호진 회장 ‘비자금 비밀’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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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에 위치한 흥국생명 본사 빌딩. 방호요원 4~5명이 1층 출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지하 1층에 영화관·식당 등이 있어서 외부인의 출입이 잦은 곳임에도 경비가 삼엄했다. 방호요원들은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려는 사람에게 “어디에 가려고 하느냐”고 물었다. 전날 검찰의 압수수색을 당한 여파가 남아 있는 분위기였다.

이 건물 24층에는 이호진(48) 태광그룹 회장의 개인 사무실이 있다. 그룹에서는 ‘펜트하우스’라고 부르는 곳이다. 호텔이나 고층 빌딩의 꼭대기 층에 있는 최고급 객실이나 주거 공간을 의미하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이 회장이 이곳을 숙소로도 이용하기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는 “펜트하우스가 이 회장의 자택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검찰의 압수수색 이전까지 이곳은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펜트하우스에 출입할 수 있는 사람은 이 회장의 최측근으로 제한돼 있다. 24층까지 엘리베이터로 연결돼 있지만 입구는 항시 보안장비로 잠겨 있다. 출입 제한이 엄격하다 보니 내부 구조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날 펜트하우스의 테라스 방향 창문은 블라인드로 모두 가려져 있었다.

검찰 등에 따르면 이 회장의 사무실은 24층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ㄱ’자 형태인 사무실은 북쪽의 인왕산 방향으로 난 테라스 쪽 창문을 대부분 사용한다. 같은 층에 회의실과 대기실, 흥국생명 경영진 사무실이 마련돼 있다. 이곳에서 태광그룹의 최고 의사 결정이 이뤄진다.

검찰이 16일 이 회장의 장충동 자택 과 함께 흥국생명 빌딩 24층을 전격적으로 압수수색한 것은 이 같은 맥락에서다. 태광그룹의 ‘사령탑’을 수색해서 비자금과 정·관계 로비 의혹을 풀 열쇠를 확보하려 한 것이다. 이번 수사가 비자금 의혹의 핵심에 있는 이 회장 일가를 겨눈 것이라는 점도 분명해진 셈이다. 이 회장이 지난 11일 해외로 출국한 지 4일 만인 15일 귀국한 것도 이 같은 분위기를 감지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비자금 조성이나 로비 관련 사안을 이 회장이 직접 챙겼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태광그룹 관련 의혹을 폭로한 박윤배 서울인베스트 대표는 “이 회장의 최측근이 아니면 그룹 내에서 일어나는 일을 거의 모른다”며 “그룹 내 수많은 결정이 펜트하우스에서 내려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압수수색 자료를 분석한 뒤 이 회장 일가를 조만간 소환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태광그룹 의사 결정의 정점에 있는 이들을 상대로 전·현직 임직원의 이름으로 차명 주식을 보유한 경위, 비자금의 규모와 용처 등을 추궁할 방침이다. 검찰은 이 회장 등에 대한 조사를 한 뒤 태광그룹이 종합유선방송 사업 등을 확장하는 과정에 청와대와 방송통신위원회 등 정·관계에 로비를 벌인 의혹을 규명할 계획이다. 서울서부지검은 최근 한화수사를 담당했던 검사 등을 태광그룹 수사에 추가로 투입했다.

글=정선언·김효은 기자
사진=강정현·김효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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