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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발 딛고 숨쉬는 게 이렇게 행복할 줄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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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33인’ 하면 우리는 3·1운동의 민족대표 33인을 떠올린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칠레에도 ‘33인(Los treinta y tres)’이 생겼다. 광산 붕괴사고에서 생환한 33인은 이제 칠레의 민족적 영웅이다.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은 “사고 전의 칠레와 이후의 칠레는 같은 나라가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칠레 북부 산호세 광산 붕괴 사고로 매몰 69일 만에 구조된 광부 33인 중 최연소자인 지미 산체스(가운데)가 구조 이틀 만인 15일 퇴원해 가족들과 포옹하고 있다. 코피아포(칠레)=장연화 LA지사 기자

69일 만에 구조된 광부 33명 중 19세로 최연소자인 지미 알레한드로 산체스 라게스를 만난 것은 15일 그의 집 앞에서였다. 한국 언론 가운데 생존자와 처음 한 인터뷰였다. 지미 산체스는 기자를 보자마자 “악몽과도 같은 나날이었다. 처음에는 이대로 죽을 수 있겠다는 공포가 엄습했다. 그러나 동료들이 함께 의지하고 서로에게 용기를 주면서 생존의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19세의 어린 나이 치고는 어른스러웠다. 지미 산체스의 아버지는 의젓해진 아들에 대해 “아들을 잃은 줄 알았는데 어른이 된 아들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지미 산체스는 17세인 여친 엘렌과의 사이에 4개월 된 딸 바르바라를 두고 있다.

축구(포워드)를 잘하는 지미 산체스는 수줍은 청년이다. 말수도 많지 않다. 매몰돼 있던 624m 지하에서 다른 동료들을 카메라에 담기를 좋아했지만 정작 그 자신은 사진 촬영을 싫어한다고 말했다.

산체스는 고향인 푸에블로 프로그레소에 돌아와 가족들과 만난 뒤 기자의 인터뷰에 응했다.
지미 산체스가 고향 마을에 도착하기 수시간 전인 15일 오전 11시30분(현지시간). 푸에블로 프로그레소라고 불리는 작은 마을 입구 도로에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아들이자 형제, 친구 지미를 환영한다’고 적힌 배너가 나무 위에서 펄럭이고 있었다.
도로 입구에 있는 집들의 대문과 창문마다 ‘지미, 사랑해’라고 정성스럽게 적은 컬러 종이와 칠레 국기가 걸려 있었다.

“지하에선 물 부족이 가장 큰 걱정”
지미가 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곳은 담장을 노랗게 칠한 집이다. 지미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은 가족들은 아침부터 앞마당 지붕에 수십 개의 하늘색·흰색 풍선과 종이 리본을 장식하고 담장 밖에도 지미의 어릴 적 사진과 그리움을 담은 글을 쓴 종이 포스터를 닥지닥지 붙여 놓았다.

집 앞에는 아침식사도 거르고 아들을 기다리고 있는 아버지 후안 산체스(48)와 형 후안(24)이 나와 있었다. 어머니 노르마(41)는 마당에서 빗질을 하고 있었다. “아들이 오기 전에 집 안을 치워야 한다”며 상기된 얼굴로 빗질을 계속했다.

이 집 식구들은 동네에서도 점잖고 성실한 가족으로 소문나 있다. 지미도 나이에 비해 의젓하고 이웃 어른들에게 공손한 청년이라고 주민들은 입을 모았다. 그 때문에 이 동네에 거주하는 44가구 모두 한마음이 돼 지미의 환영행사를 준비했다.

지미 가족이 거주하는 푸에블로 프로그레소는 한국식으로 말하면 달동네 정도 된다. 가진 것 없이 모여든 사람들이 마을을 형성하고 정착해 살아가는 곳이다. 가난한 생활 속에서 만났기 때문인지 이웃 간의 정이 끈끈하다. 이날 환영식을 준비하는 데 온 동네 청년들이 나와 도왔을 정도다.

오후 6시 드디어 아들이 돌아오자 아버지 산체스는 집 안에 숨겨 둔 샴페인을 꺼내 “이제 진짜 파티를 시작하자”고 소리를 질렀다.

이틀 동안 코피아포 지역 병원에서 검진을 받은 지미는 오전부터 퇴원 준비를 했지만 병원 문 밖에서 진치고 있는 수백 명의 기자단을 피하기 위해 오후 늦게까지 병원을 빠져나오지 못했다.

병원에는 아직 2명이 가벼운 어지럼증과 치아 통증을 치료받고 있다. 33인을 진료한 의사들에 따르면 이들은 지하에서 2개월을 지냈음에도 놀라울 정도로 건강하다. 이들의 퇴원은 군사작전처럼 비밀리에 수행됐다. 언론을 따돌리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광부들과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칠레 당국은 밝혔다.

20명의 광부와 함께 퇴원한 지미는 가족들과 동네 친구, 이웃의 환영 속에서도 “한국에서까지 취재하러 올지 몰랐다. 관심을 가져준 한국인들에게 감사드린다”고 인사말을 전했다.

산체스는 고향인 푸에블로 프로그레소에 돌아와 가족들과 만난 뒤 기자의 인터뷰에 응했다.

-지하에서 어떻게 지냈나.
“말 그대로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지냈다. 하지만 오래 생활하다 보니 익숙해지더라. 안은 덥고 습기가 높아 조금만 움직여도 지친다.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기 위해 최소한으로 행동하고 지냈다. 더위가 심해 갈증을 이겨 내기 힘들었다. 선배들의 도움과 조언이 없었다면 죽었을지도 모른다.”

-지하에서 가장 두려웠던 것은.
“물이 부족해 가장 걱정됐다. 최소한으로 마시면서 견뎠다. 다른 선배들이 돌봐 주지 않았다면 탈진했을 것이다.”

매몰 광부 33인을 구한 구조캡슐 ‘페닉스(불사조) 2호’가 세계 각국을 돌며 전시될 예정이다. 칠레 국기색인 빨간색·흰색·파란색로 칠한 캡슐이다. 지미 산체스는 13일 아침(현지시간) 페닉스 속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했다.

가족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 “사랑해요”
-구조캡슐을 타고 올라오면서 무슨 생각을 했나.
“내가 다섯 번째로 올라왔다. 앞서 올라간 선배들이 무사히 빠져나가 걱정하지 않았다. 내 차례가 오는 걸 기다리는 게 무척 초조하기도 했다. 마지막에 올라온 선배는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올라가는 도중에도 계속 줄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땅에 올라와 발을 딛고 숨을 쉬는 게 이렇게 행복한 것인 줄 몰랐다. 정말 좋다.”

-집에 돌아왔다. 소감은.
“나를 구해 준 칠레 정부에 감사드린다. 나를 기다려 준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딸에게 사랑한다는 말뿐이다.”

지미 산체스는 아직 ‘아내’ 엘렌 아발로스와 결혼식을 올리지 못했다. 둘 사이에는 넉 달 된 딸이 있다. 지하에 있을 때 아발로스에게 청혼했는데 아버지가 결혼을 반대한다. 지미의 아버지도 30년 동안 광부로 일하고 있다. 그래서 둘째 아들이 집안을 돕기 위해 광부로 취직한다고 할 때 말리지 않았다고 했다.
아버지 후안 산체스는 “나는 그동안 일하면서 한번도 이런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 아들도 문제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아들은 시작한 지 4개월 만에 사고가 났다. 소식을 듣고 자책감에 울었다. 정말 하늘이 무너진 것 같았다. 아들이 아니라 차라리 내가 그 지하 갱도에 있어야 했다고 자책했다”고 당시 심경을 들려줬다.

69일 만에 지미를 태운 구조캡슐이 지상에 드러났을 때 아들을 껴안고 “사랑한다”고 말했다는 산체스는 “살아 돌아왔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 그걸로 됐다. 이제 여한이 없다”고 감격해했다.

-건강은 어떤가.
“매우 좋다. 의사들이 젊어서 그렇다고 하더라. 하지만 보험회사에서 정밀검진을 요구해 이틀간 병원에 있었다. 퇴원 시간을 기다리는 게 너무 지루하고 힘들었다.”

-집에서 무엇을 제일 먼저 하고 싶나.
“엄마가 만들어 준 생선요리가 무척 먹고 싶다. 전화로 말했더니 엄마가 만들어 놓고 기다린다고 했다(웃음). 그리고 샤워하고 잠을 푹 잘 것이다. 집이 너무나 좋다.”
실제 지미의 어머니 노르마 산체스는 아침부터 아들을 위해 생선 요리를 준비했다. 얼마나 어머니가 보고 싶었을까. 지미 산체스는 지하에서 어머니가 음식을 만들어주는 환영을 보기도 했다.

노르마는 “나는 내 아들이 살아올 것을 굳게 믿었다. 엄마로서 내 아들을 모르겠나. 지미가 들어간 탄광이 무너져 갇혔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난 심장으로 지미가 살아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확신이 현실이 된 거다”며 목이 메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다.

어머니 “아들이 다른 직업 갖길”
칠레 정부는 앞으로 6개월간 33인의 건강을 면밀히 점검할 계획이다.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될까. 아무래도 일자리가 문제다. 생환 영웅들은 과연 알려진 것처럼 돈벼락을 맞은 것일까. 33인 중 한 명인 에디손 페나는 “광장에서 사탕을 팔게 될지도 모른다”며 근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33인 중 일부는 앞으로도 광부 생활을 계속했다고 밝힌 바 있다. 어머니 노르마는 “더 이상 광산으로 아들을 보내지 않을 것이다. 공부를 시켜 더 좋은 곳에 취직하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지미는 어머니의 바람대로 새로운 일에 종사하게 될까. 칠레 정부는 33인이 새로운 직장을 얻을 수 있게 돕겠다고 약속했다.

-한국 국민에게 인사를 한마디 한다면.
“칠레 신문에도 ‘코레아’가 많이 소개돼 한국이 매우 발전한 나라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렇게 멀리 떨어진 나라에까지 관심을 가져 줘 정말 고맙다. 한국민들의 건강과 행운을 빈다.”

이번 사고로 칠레뿐만 아니라 세계가 바뀌었다. 특히 광산업의 안전성과 정부의 위기관리 리더십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지미 산체스 앞에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그는 지하에 있을 때 친척인 록사나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하느님은 내가 여기 있기를 바랐다. 잘 모르겠지만 내가 지금부터 바뀌게 만들려고 그런지 모른다. 생각해 봤는데 나는 많이 바뀔 것 같다.”

코피아포(칠레)=장연화 LA지사 기자 yhc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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