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꿈나무] 가족의 빈자리 메우는 꼬마 농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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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어린 농부 영제
한봉지 지음, 백명화 그림
두부공장, 85쪽, 7800원

어린이병원에서 만난 작은 천사들
미야모토 마사후미 지음, 황소연 옮김
한울림, 166쪽, 8500원

경상북도 의성군의 한 시골 마을. 부지깽이도 벌떡 일어서서 일을 해야 한다는 농번기에 초등학교 3학년생 영제는 속이 탄다. 벼도 베고 고추도 따야 하지만 일할 사람이 없는 것이다. 아빠는 집 나간지 오래고 집안의 유일한 일꾼이셨던 외할아버지는 빗길에 경운기가 논두덩에서 미끄러지는 바람에 다친 후 거동이 불편하시다. 정신분열증을 앓는 엄마는 깜빡깜빡 정신을 놓곤 한다. 자칫 태풍이 몰려와 한 해 농사를 망칠까봐 걱정이 된 영제는 할아버지의 낫을 찾아들고 논으로 향한다. 어른들은 한 손에 서너 포기씩 잡아 베지만 영제는 서툰데다 손이 작아 한 손에 한 포기씩이다. 왜 깜깜해져서 들어오냐는 외할머니의 닦달을 친구랑 놀다 늦었다며 둘러댔지만 이튿날 아침 이내 들통나고 만다. 옆집 아저씨가 외할머니에게 영제가 대견하다고 칭찬했기 때문이다. 외할머니가 조용한 목소리로 "다시는 그라지 마라"고 나무라자 영제는 눈물이 난다.

더 기구하고 슬픈 이야기도 있겠지만 '어린 농부 영제'의 사연이 특별히 사무치는 이유는 실화를 그림 동화책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영제의 이야기는 지난해 가을 한 방송사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통해 짤막하게 소개됐었다. 소설가인 저자는 경운기를 몰고 다니며 어른 못지 않게 농사일을 척척 해대는 영제를 만나기 위해 의성군으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책은 TV 화면에 비친 '5학년생 농사꾼 영제'가 있기까지 영제가 겪어야 했던 우여곡절들을 소개한 것이다.

떨어지지 않으려는 누렁이만 데리고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일, 경운기라면 질색을 하는 외할머니를 마침내 태우고 읍내 장에 고추를 팔러 간 일, 어느새 경운기 박사가 돼 감나무집 할아버지 경운기를 고쳐주고 제대로 농사일을 배운 일 등. 사연마다 애틋하고 뭉클하다.

'어린이병원에서 만난 작은 천사들'도 '사실의 힘'으로 메마른 감성을 자극한다. 책은 일본 나가노 현립 어린이병원에서 불치병과 싸우는 여섯 아이의 사연을 소개한 다큐멘터리성 동화다. 책의 부제는 '건전지가 다하는 날까지 2'. 스무 명 아이들이 직접 쓴 글들을 여과없이 모아 펴낸 '건전지 1'이 관심을 끌자 작가가 따라붙어 직접 취재해 투병기를 재구성했다. 허구가 아닌 현실의 기구함에 자신을 비추어 용기와 희망을 얻게 해준다는 점이 두 책의 자랑이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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