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f&] 10타차 뒤집은 양용은, 그 뒤엔 20년지기 박경구 프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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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면

지난주 10타 차를 뒤집은 역전 우승 드라마가 장안에 화제입니다. 양용은(38)이 10일 끝난 한국오픈에서 10대 노승열(19)을 상대로 거짓말 같은 역전 우승을 한 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양용은은 “친구와 합작한 우승이어서 더 기쁘다”고 했습니다. 그 친구는 캐디로 골프백을 멨던 20년 지기 박경구(39) 프로입니다. 올해 2승을 합작했다지요. 두 사나이를 만나 그들의 만남과 우정, 그리고 골프에 대한 야망을 들어봤습니다.

#그림자 같은 친구…그들이 합작한 2승

“첫날 두 번째 홀(11번 홀)에서 트리플보기가 나오면서 많이 힘들었어요. 갑자기 골프백이 두 배로 무거워지더라고요. 경기는 안 풀리고 스코어(3오버파)는 줄지 않고…. 친구를 믿었지만 그래도 이건 기적이죠. 꿈만 같아요.”

양용은(왼쪽)과 박경구는 “서로 그림자 같은 친구”라고 말한다. 20년 전 청년 시절엔 실내연습장 퍼팅 그린의 찬 매트 위에 이불을 깔고 함께 잠을 청하며 프로의 꿈을 키웠다. 양용은은 캐디로 나선 친구 박경구와 4년 만인 올해 한국오픈에서 또다시 우승을 합작했다. [JNA 제공]

한국오픈에서 양용은의 캐디를 했던 박경구씨는 상기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2006년 한국 오픈 우승 당시엔 1라운드부터 선두로 나섰기 때문에 신이 났거든요. 그런데 천하의 타이거 우즈를 꺾었던 메이저 챔프가 고국 무대에서 컷 탈락을 걱정해야 하니 친구로서, 그것도 캐디로서 마음이 얼마나 착잡했겠어요.”

박씨는 전문 캐디는 아니다. 그러나 친구 양용은이 도움을 청하면 외국까지도 날아가 골프백을 멘다. 박씨는 4년 전 같은 장소에서 열린 한국오픈에서 양용은이 생애 첫 내셔널타이틀을 거머쥘 때도 기쁨의 순간을 함께했다. 그때도 캐디였다. 양용은은 “당시 (박)경구와 함께 한국오픈에서 우승했던 일을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올해 (양)용은이가 2승(볼보차이나오픈·한국오픈)을 했는데 공교롭게도 두 번 모두 제가 백을 멨죠. 친구의 우승을 도왔다는 것만도 큰 기쁨이고 행복입니다.” 양용은은 아시아에서 시합이 있을 때면 친구를 찾는다.

“서로의 눈빛만 봐도 뭘 생각하는지, 뭘 원하는지를 알죠. 그래서 선수와 캐디로 함께 경기를 하게 되면 마음이 편해요.”

양용은은 박경구를 “그림자 같은 친구”라고 했다.

#서울내기와 제주 촌놈의 만남

“이봐요. 용은씨.”

“네. 경구씨.”

두 사나이는 20년 전 제주도에서 이렇게 처음 만났다. 고교를 막 졸업한 두 청년은 1990년 봄 제주 한라 골프연습장에서 처음 만났다. 두 사람 모두 골프연습생 신분이었다. 서울 출신인 박경구가 제주 사나이 양용은보다 먼저 이 골프연습장에 둥지를 틀었다. 양용은은 박경구보다 한 달 뒤쯤 이 골프연습장에서 일자리를 구하면서 ‘20년 지기’를 만나게 됐다.

“덩치가 큰 녀석 치고는 섬세했어요. 손재주가 있었어요. 말수가 적어 무뚝뚝하게 느껴졌지만 망치나 펜치로 즉석에서 뭐든 잘 만들어냈어요.”

박경구의 눈에 비친 양용은의 첫인상이다.

“한번은 골프백이 무겁다고 했더니 철사와 가죽 끈 같은 것을 이용해서 양쪽 어깨에 멜 수 있게끔 만들어주더라고요. 또 한번은 (양)용은이가 어디서 시동이 안 걸리는 고물 오토바이를 구해 와서는 멀쩡하게 고쳐놓기도 했어요.”

박경구는 그 오토바이 때문에 양용은과 더 깊은 우정을 나누게 됐다고 했다. 그 오토바이로 인해 죽을 뻔했기 때문이다. 몸이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몰래 타고 나갔다가 버스와 충돌하면서 오토바이가 두 동강이 나는 사고를 냈다. 당시 양용은은 박경구의 부상이 경미한 것을 확인하고는 딱 한마디를 했다고 한다.

“내 오토바이 어떻게 됐느냐.”

#친구 따라 서울 가다

지난 10일 끝난 한국오픈 최종 4라운드에서 기적 같은 10타 차의 역전 우승을 일굴 당시 양용은에게 퍼팅 라인을 조언하는 박경구(오른쪽).

1년 가까이 제주의 연습장에서 샷을 가다듬던 두 사람은 90년 겨울 제주 생활을 청산하고 상경한다. 박경구가 군 입대 영장을 받아 서울로 가게 되자, 양용은도 두 달 뒤 제주를 떠나 서울로 입성한다. 양용은은 박경구가 군 입대를 1년 연기하자, 함께 잠실의 한 실내연습장에 근무하면서 프로의 꿈을 키워 갔다. 퍼팅연습장이 그들의 숙소였다. 밤이면 퍼팅장 매트 위에 이불을 깔고 잠을 청했다.

“(박)경구는 서울 출신이라서 그런지 나보다 피부도 하얗고 어려 보였다. 그런데 눈매가 깊고 매서웠다. 하지만 마음은 항상 따뜻했다.”

그 시절 친구 박경구에 대한 양용은의 기억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함께 먹고 자면서 서로를 격려했다.

양용은은 이후 박경구가 군 생활을 하는 동안 93년 세미프로테스트에 합격을 했고, 박경구는 94년 3월 군 제대와 함께 경기도 여주 골프장에서 연습생 신분으로 근무를 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양용은도 여주 골프장에서 친구와 함께 훈련을 하면서 마지막 관문인 ‘프로테스트’를 준비했다. 세미프로였던 양용은은 결국 96년 8월 프로테스트를 통과해 정식 프로가 됐고, 그 이전까지 잇따라 낙방했던 박경구도 그해 양용은에 앞서 세미프로테스트를 통과하는 결실을 거뒀다. 두 사람이 제주에서 친구가 된 지 6년 만에 맛보는 짜릿한 생애 ‘첫 승’이었다.

그때 두 사람은 한 가지 약속을 했다. 그 약속은 프로무대 첫 시합 때 서로의 캐디를 해주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박경구는 97년 포카리스웨트오픈에서 양용은의 캐디를 맡아 그 약속을 지켰다. 그러나 결과는 컷 탈락이었다.

박경구는 “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캐디로서의 역할이 빵점에 가까웠다. 경기 중 선수에게 ‘왜 이리도 못 치느냐’고 핀잔을 줬다”고 말했다. 반면 양용은은 99년 2부 투어 첫 대회에 출전한 박경구의 캐디를 맡아 5위의 성과를 냈다. 이후 박경구는 2004년 처음으로 열렸던 한·일 남자프로골프 국가대항전에서 양용은의 캐디를 맡았다.

#제2의 메이저 우승 꿈나무를 찾아서

양용은과 박경구는 이제 또 다른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양용은은 자신의 이니셜을 따 ‘Y.E 스포츠 드림&퓨처’라는 스포츠 매니지먼트 회사를 지난 3월 설립했다. 박경구는 이곳의 이사직을 맡고 있다.

“골프클럽을 잡은 지 19년 만에 첫 메이저대회 챔피언이 됐다. 그런데 ‘내가 만약 유망한 후배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들은 그 시간을 10년은 더 앞당길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후배들에게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매니지먼트 회사를 꾸리게 됐다.”

양용은은 자신의 골프인생을 되돌아보면 “결코 쉽지 않은 길이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양용은은 다양한 수익사업을 통해 어려운 환경에서 열심히 노력하는 젊은 운동선수들을 돕고 그들의 꿈을 실현하는 데 보탬이 되는 후원 사업에 역점을 둘 계획이다. 두 사나이는 “이제 제2, 제3의 메이저대회 우승 꿈나무를 육성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최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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