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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붕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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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앞날은 장담하지 않는 게 좋다. 상황은 돌발한다. 그런 만큼 여러 갈래 가능성을 보고 앞날을 대비해야 한다.

북한 정권에 닥칠 여러 가능한 시나리오 중 하나는 동독식 내부 붕괴다. 미국의 강성 보수파 잡지 '위클리 스탠더드'가 지난 21일 이런 주장을 폈다.

동독식 붕괴의 정점은 1989년 12월에 있었던 베를린 장벽의 개통이다. 빈곤과 억압, 끝없는 탈주민의 행렬, 개혁.개방의 세계 흐름에 대한 거역이 현재의 북한과 과거 동독의 공통점이다.

동독의 독재자 호네커는 붕괴를 예측하지 못했다. 후원자였던 소련의 고르바초프가 그에게 "당이 인민의 삶에 기여하지 못하면 당의 책임이다. 지금 동독 당국이 결단을 주저하면 망하고 말 것"이라고 충고했다. 자유를 요구하는 민중시위에 호네커가 쫓겨난 것은 바로 10여일 뒤였다. 그는 불과 몇달 전만 해도 "동.서독 장벽은 앞으로 100년은 갈 것"이라고 장담했다.

서독의 콜 총리도 장벽 붕괴 소식을 외국 방문 중에 들었다. 그날은 이렇게 예고없이 들이닥쳤다. 상황 대처의 매뉴얼은 없었다. 모든 게 처음이었다. 콜 총리 특유의 낙천성과 결단력, 추진력이 도움이 됐다. 콜은 "우리는 한 민족이다. 통일이라는 열차는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며 급변사태를 통일의 비전으로 연결시켰다.

주변 4강과의 통일외교는 콜에게 가장 힘든 과업이었다. 미국 대통령에겐 독일이 통일되더라도 미국의 확고한 동맹국으로 남아 있을 것임을 약속했다. 영국과 프랑스 지도자에겐 통일독일이 결코 그들을 위협하지 않을 것임을 설득했다. 고르바초프에겐 독일 통일에 협조하는 대가로 150억마르크를 줬다.

서독이 동독식 붕괴를 수습하는 데는 2조마르크의 돈과 10여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어떤 때는 하룻밤 사이에 450억마르크를 화물차에 실어 동독 지역에 풀기도 했다. 독일 경제의 장기침체는 여기서 비롯됐다.

북한이 동독식으로 붕괴한다면 한국에는 재앙이 될 것이다. 한국은 서독만한 외교력이나 경제력이 없기 때문이다. 외교적으론 주권 공백상태가 될 북한의 관리권이 중국이나 미국에 넘어갈 수 있다. 한국이 북한을 떠맡게 된다 해도 경제적으로 남북한은 공멸적 고난을 경험할지 모른다. 원치는 않지만 이 재앙에 대비해야 한다.

전영기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