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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의 소곤소곤 연예가] 산이 키운 '메뚜기 소년' 전인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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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대한민국 대표 로커 전인권과 개그맨 유재석의 공통점은? 바로 그들의 별명이 모두 '메뚜기'란 사실이다. 겉보기에 유재석은 그렇다 치더라도 전인권에게는 도저히 상상조차 안 되는 이 별명의 실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제가 지금은 이렇게 말도 행동도 느리지만 어릴 땐 무척 빨랐어요. 안 믿기죠? 예전에는 놀이터가 따로 없었잖아요. 그래서 항상 친구들과 동네 뒷산에서 놀았는데 산에 올라가면 너무 빨라서 보이지 않을 정도라고 친구들이 메뚜기란 별명을 지어줬죠. 심지어 나중에는 점점 속도가 더 붙어서 제트기라고도 불렀어요."

그의 유년시절 별명에는 풍수지리가 한몫 톡톡히 했다. 북악산을 병풍 삼은 삼청동 꼭대기의 집. 할아버지 때부터 현재 그의 아들까지 4대를 이어 한집에서 무려 반세기, 50년째 살고 있단다. 덕분에 어린 전인권에겐 산이야말로 최고의 장난감, 동화책, 그리고 친구였다는데.

"산에서 놀면 일년 내내 지루한 줄 몰라요. 봄에는 진달래.아카시아 꽃 따먹고, 여름에는 버찌.산딸기.산복숭아, 가을에는 송이버섯 캐러 다녔죠. 겨울엔 썰매 타고 활 쏘고 나면 또 봄이 오죠."

이렇게 보면 말썽꾸러기에 못 말리는 개구쟁이일 것 같지만 우리의 효자 전인권, 향긋한 과일을 보면 제일 예쁜 것으로 골라 어머니 갖다 드리는 것은 절대 잊지 않았다고. 산이 그에게 준 것은 꽃과 과일뿐만이 아니었다. 바로 인생 최고의 선물, 음악.

"제가 아파트 같은 곳에서 살았더라면 성격상 혼자 방안에 앉아 그림만 그렸을 걸요. 그런데 산에서 살다보니 늘 맑은 공기 맘껏 마시며 소리지르며 놀았지요. 사계절 늘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산을 통해 감수성도 많이 키웠고요. 열일곱 살 때 처음 노래를 배우기 시작했는데요. 그때 노래는 하고 싶은데 돈은 없고. 그래서 저의 첫 음악 선생 최춘길 형님께 교습비로 산에서 제철 과일을 따라 드렸어요. 그렇게 가수의 길이 시작됐죠."

문득 산과 참 많이도 닮아 있는 그를 보며 이런 시 구절이 떠오른다.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니 산은 인권을 키웠도다.'

이현주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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