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기흥 신임 변협회장 "사법 개혁, 특정 정파 위한 개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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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기흥 신임 대한변협 회장이 21일 취임사를 하고 있다.[연합]

대한변호사협회(변협)는 21일 정기총회를 열고 단독출마한 천기흥(63)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을 43대 회장으로 선출했다. 천 변호사는 1967년 고등고시 8회에 합격, 검사가 된 뒤 91년 서울지검 총무부장을 마지막으로 검찰을 떠났었다.

변협 회장은 대법원 산하 '대법관 제청 자문위원회'의 당연직 위원이며, 법조 일원화(경력 변호사와 검사 등을 판사로 임용하는 제도)가 도입되면 변호사 가운데 판사를 뽑을 때 일부 추천권도 갖게 된다.

정치권 등에선 올해 퇴임하는 대법관들 후임에 현 정부와 '코드'가 맞는 인사들을 선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진보 성향의 민변(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 측 지지를 받았던 회장에 보수 성향의 천 변호사가 선출됨에 따라 변협이 진보 성향의 법조인들이나 정치권과 상당한 긴장관계를 형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 "변호사 대량 양산정책 반대"=천 회장은 취임사에서 "변협이 권력 감시와 비판을 게을리하면 짠맛을 잃은 소금과 같다"면서 "국민을 위한 사법개혁이 이뤄지지 않을 때는 단호히 거부하겠다"고 말했다.

천 회장은 특히 정부가 추진 중인 미국식 로스쿨 제도 도입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그는 "이공계를 살리는 게 중요한 과제라고 하면서 법학도서관 등을 짓는 데 수백억원을 들이는 게 개혁인가. 변호사 대량 생산이라는 은폐된 목적을 위해 미국식 로스쿨을 이용한다는 의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이어 "법조 일원화, 대법원 기능 문제 등 다른 개혁 과제들도 이런 식으로 진행되면 국민을 위한 사법개혁이 아니라 특정 정파나 집단의 이익을 위한 개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법관 제청 문제에 대해서도 "판결문 몇 개를 이상하게 썼다고 해서, 젊다고 해서, 여성이라서 대법관이 돼야 한다는 사고에는 반대한다"고 말했다. 진보적 성향의 판사들을 대법관 후보로 추천해온 민변과 일부 시민단체를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 변협, 정부와 대립각 세우나=정부와 대법원이 추진 중인 사법개혁을 천 회장이 정면으로 비판한 것은 보수 성향 변호사들의 누적된 불만을 대변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보수 성향의 변호사들은 박재승 회장이 이끈 전임 변협 집행부가 지난 2년간 현 정권에 대해 지나치게 우호적이라며 불만을 표시해 왔다.

천 회장은 "민변과 시변(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민변과 반대 성향) 모두 변협 회원"이라는 말로 민변과 대립각을 세울 의향이 없음을 밝혔다. 그러나 결국은 사법개혁 방향이나 대법관 후보 추천 등 현안에서는 민변과 긴장관계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천 회장이 이날 새로 임명한 10명의 상임이사 가운데 민변 출신은 단 한명도 없다. 전임 박재승 회장 시절에는 변협 상임이사 10명 중 4명이 민변 출신이었다.

김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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