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초보 마라토너 황운하 기자 10km 도전기 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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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조(40) 한국마라톤국가대표팀 감독(대한육상경기연맹 마라톤 기술위원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42.195㎞ 마라톤 풀코스를 3시간 내에 완주하는 ‘서브 스리(sub three)’는 언감생심이지만 10㎞를 우습게 생각했던 마음이 싹 날아갔다. 황 감독의 말은 생초보 마라토너를 겁주는 ‘공갈’이 아니다. 10㎞는 평소 체력을 믿고 준비 없이 무리하게 도전하는 사람들에겐 마(魔)의 코스다. 한국마라톤협회에 따르면 국내 마라토너는 약 330만 명으로 추산된다. 전국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도 420여 개나 된다. 마라톤을 건강 파수꾼으로 삼으려면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마라톤 시즌을 맞아 스포츠용품 기업인 리복 후원으로 ‘황영조 감독과 함께하는 생초보 마라토너 황운하 기자의 10㎞ 도전기’를 2회에 걸쳐 소개한다.

글=황운하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체력검사 결과 “유연성 낙제점”

황영조 감독(왼쪽)과 기자가 올림픽공원에서 하체 스트레칭을 하고 있다. 황 감독은 “마라톤 전에는 몸을 쭉 늘리는 스트레칭 후에 각 관절을 풀어주는 체조를 해야 부상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10월 4일 오후 3시.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 패스트푸드점에서 황영조 감독을 처음 만났다. 기자가 오렌지주스를 주문하자 황 감독이 참견한다. “아마추어 마라토너나 아프리카 선수들이 완주한 후 노란 물을 토하는데 오렌지 주스를 먹고 역류해서 그래요. 카페인이 있는 커피를 시합 전에 마시면 집중력이 높아져서 좋죠.” 199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황 감독의 말에 귀가 쫑긋했다. 커피 두 잔을 시켰다.

마라톤은 달리는 거리에 따라 풀코스(42.195㎞), 하프코스(20㎞), 10㎞, 5㎞ 네 가지로 나뉜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코스는 10㎞. 일상 생활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가장 큰 운동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황 감독은 “풀코스와 하프코스는 준비를 철저히 하기 때문에 문제가 적다”며 “사고는 의욕만 앞세운 초보자들이 많은 5, 10㎞에서 발생한다”고 경고했다. 그는 “머릿속에서 기록은 지우고, 체력을 길러 편안하게 완주한다는 마음으로 뛰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체육진흥공단 국민체력센터로 자리를 옮겼다. ‘지피지기면 10㎞ 완주’. 기자의 체력이 마라톤 도전에 무리가 없는지 검진을 받았다.

한 시간 동안 진행된 신체구성(신장·체중 등), 심폐지구력, 근지구력, 순발력 등 약 10개 항목의 검사도 평소 운동량 ‘0’인 기자에겐 버거웠다. ‘신체 성적표’에선 10㎞를 뛰는 데 문제없다는 ‘합격’ 판정을 받았다. 10㎞ 적정 ‘랩타임(lap time)’은 1시간15~20분으로 나왔다.

국민체력센터 선상규 원장은 “낙제점인 유연성을 길러야 말초신경까지 에너지가 전달돼 운동 효율을 높일 수 있다”며 “특히 운동부담이 높아지면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는 부정맥이 나타난다”고 경고했다. 평소 운동을 하지 않은 탓이 큰데, 뛰는 도중 집중력이 떨어지고 힘들면 걸으면서 수분을 섭취해 호흡을 회복해야 한다.

선상규 원장은 “운동 초보자들은 체력검사를 통해 신체상태를 파악한 후 적합한 운동을 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준비운동·자세·호흡 등 6가지 숙지해야

심장과 폐 기능이 마라톤을 소화하는데 무리가 없는지 ‘심폐지구력’을 측정하고 있다.

부상 없이 10㎞를 완주하려면 몸을 만들어야 한다. 황 감독은 초보자들이 숙지해야 할 ‘족보 6가지’를 꼽았다. 내게 맞는 운동화, 준비운동, 바른 자세, 일정한 속도, 고른 호흡, 체중관리이다.

달리기를 하기 전 우선 준비해야 할 것이 운동화. 뛰는 동안 발목·무릎·대퇴골 관절이 견뎌야 할 충격은 엄청나다. 이 충격을 1차적으로 완화시켜 주는 게 운동화다. 황 감독은 “평소 신는 것보다 5㎜ 커야 한다. 운동화 밑창의 쿠션이 좋고, 앞 코가 쉽게 구부러지는 신발이 부상을 줄인다”고 말했다. 기온이 떨어진 가을·겨울에는 체온 손실이 많은 곳을 감싸는 장갑·목도리·모자를 착용한다.

본격적으로 뛰기에 앞서 경직된 몸을 풀어야 한다. 우선 신체를 쭉 늘리는 스트레칭을 한 뒤 목·어깨·허리·무릎·발목 관절을 앞뒤 좌우로 돌리는 체조로 몸을 푼다. 달리고 난 뒤에는 체조→스트레칭의 역순으로 한다.

뛰는 과정은 ‘걷기→가볍게 뛰기→달리기→가볍게 뛰기→걷기’를 지킨다. 피트니스센터의 트레드밀을 기준으로 보면 시속 6㎞의 속도로 5분간 걷는다. 이후 6.5㎞ 속도로 5분간 가볍게(빨리 걷는 속도) 뛰다가 8㎞ 속도로 높여 20~30분을 달린다. 마무리 운동은 시속 6.5㎞와 5㎞에서 각 5분씩 걷는다. 중간에 호흡이 가빠져 힘들면 휴식을 취해 호흡이 돌아온 뒤 한 번 더 호흡이 가쁠 때까지 뛰고 끝낸다.

뛸 땐 다리(무릎, 발)를 벌리지 말고 11자 형으로 유지한다. 다리가 벌어지면 체력이 손실되고 부상 위험이 높아진다. 호흡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편안하게 하되 깊게 들이마시고 짧게 내뱉는다. 팔은 11자로 흔들지 말고 가슴 안쪽으로 ‘∧’이 그려지도록 한다.

뛰기 전에는 위의 부담을 줄이고 음식이 역류하는 것을 막기 위해 수분 섭취만 한다. 음식을 먹었다면 두 시간 뒤에 뛴다.

마라톤은 하체 근력이 좋을수록 유리한 운동이다. 황 감독은 “아침·점심·저녁에 제자리에서 앉았다 일어났다를 각 50회 반복하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황 감독은 자택 18층 아파트에서 내려오는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이 운동을 한다.

체중관리도 중요하다. 세계적인 마라톤 선수는 모두 깡말랐다. 평소 뛰지 않는 사람의 관절운동 능력은 걷기에 맞춰져 있다. 체중은 마라톤을 준비하며 서서히 뺀다.

황영조 감독이 말하는 ‘초보자의 가을 마라톤’

운동화 평소 치수보다 5mm 크고 밑창에 쿠션이 있는 것

복장 모자·장갑·목도리로 체온손실이 많은 곳 감싸야

음식 뛰기 전 수분만 섭취(음식 먹었다면 두 시간 후 운동)

준비운동 뛰기 전 스트레칭→체조, 뛴 후 체조→스트레칭

달리기 걷기→가볍게 뛰기(빨리 걷는 속도)→달리기→가볍게 뛰기→걷기 순

자세 뛸 때 다리는 11자형, 팔은 가슴 안쪽으로 ‘∧’이 그려지도록 흔들어야

호흡 깊게 들이 마시고 짧게 내뱉어야

장소 노면이 고른 곳


5㎞ 도전 … “빨리 뛰는게 잘 뛰는것 아냐”

훈련 나흘째인 10월 7일 오전 6시30분.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에서 황영조 감독을 만났다. 처음으로 5㎞에 도전하는 날이다. 석촌호수를 두 바퀴 뛰면 5.06㎞다. 기자에겐 만만찮은 거리다. 날씨는 섭씨 12도에 옅은 안개가 깔려 스산했다.

긴 운동복에 반팔 티셔츠를 껴입었다. 운동화는 밑창의 쿠션이 좋아 초보자에게 적합한 리복의 ‘직텍’을 신었다. 특히 밑창이 지그재그 모양이어서 다리 근육의 피로와 충격을 20% 감소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발에 가해지는 하중을 분산시켜 힘들지 않게 뛸 수 있다는 것.

15분 정도 몸을 풀고 가볍게 걸었다. 곧 황 감독이 신호를 보냈다. “자 이제 뜁니다. 40~45분 정도 걸려요.”

1분이나 뛰었을까. “자세 잡아요. 다리 벌리지 말고 11자로 해요. 바지가 살짝 스친다는 느낌으로.”(황 감독)

약 1㎞를 달리니 몸에서 열이 나고 경직된 근육들이 풀렸다. 빨간 티셔츠를 입은 40 초반 남성이 옆을 ‘휙~’ 지나갔다. 속도를 내고 싶은 욕심이 생겨 황 감독을 한 걸음 정도 앞서 나갔다.

“빨리 뛰는 게 잘 뛰는 게 아니에요. 조금만 빨라져도 호흡을 잃어서 못 뛰어요. 초보자들은 뛰면서 옆 사람과 힘들지 않게 얘기할 수 있을 정도의 페이스가 가장 좋아요.”(황 감독)

석촌호수 한 바퀴(2.5㎞)를 뛰었다. 신기했다. 힘들기보다 덥혀진 몸과 살짝 밴 땀으로 기분이 좋았다. “오, 잘 뛰시네요. 마라톤은 건강해지고 즐겁기 위해 하는 거예요. 시선은 편안하게 두면 돼요. 나무도 보고, 자세도 확인하고, 저기 호수에서 놀고 있는 오리도 보면서 즐겁게 뛰면 10㎞ 문제없어요.”(황 감독)

어느새 5㎞ 골인 지점에 도달했다. 랩 타임 42분14초. 우려와 달리 많이 힘들지 않았다. “조금 더 뛸 힘이 남아 있을 때 마치는 게 좋아요. 그래야 운동을 지속할 수 있어요.”(황 감독)

생초보 마라토너인 기자는 이달 26일 10㎞ 마라톤에 도전한다.

하나라도 해당하면 마라톤에 도전하기 전 의사 찾아야

● 60세 이상인데 힘든 운동을 계속 하지 않음

● 55세 이전에 심장병을 앓은 가족이 있음

● 운동 중이나 후에 가슴 왼쪽과 중앙 부위, 왼쪽 목·어깨·팔에 통증과 압박감

● 기절하거나 갑자기 현기증을 느끼는 경우가 잦음

● 약간만 힘을 써도 심하게 숨이 참

● 고혈압인데 치료받지 않음

● 자신의 혈압을 모름

● 심장에 문제가 있거나 심장마비로 진단 받음

● 관절질환으로 진단 받음

※자료: 체육과학연구원


도움말
성봉주 체육과학연구원 마라톤 기술위원
윤찬기 한국마라톤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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