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일의 연작 소설집 '푸른 혼'에 나오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수괴' 도운종이 사형당하는 장면이다. 이 책은 1974년 대법원 판결 하루도 못 돼 사형당한 사건 주인공 8명에 관한 소설이다. 소설이지만 당시를 기억하는 주변사람들은 묻혀 있던 내막을 처음 공개하는 '논픽션'이라고 받아들인다. 소설 속에서 도씨는 '진보적 꿈을 꿨다'는 이유로 사형에 이르게 되며 바로 그 때문에 독자들을 울분케 한다.
도운종의 실제 모델인 도예종은 64년 인혁당 사건 때 '별 혐의 없이' 3년간 투옥됐다. 67년 석방된 그는 대구에서 삼성토건회사.선아기업회사 전무 등을 지내다 72년 삼화건설 회장이 됐다. '평범하게' 살던 그는 73년 4월 19일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으로 체포됐다. 중앙정보부 남산 분실에서 달포에 걸친 '고문' 뒤 그는 인혁당 재건위의 핵심인물로 '등장'했다. 대법원은 75년 4월 8일 오전 10시 피고 궐석 상태에서 재건위 관련자 7명, 민청학련 관계자 1명에게 사형 판결을 내린다.이들은 4월 9일 오전 4시15분부터 사형대에 끌려나왔다. 8명이 두 시간 사이 20분 간격으로 처형됐다. 도씨는 두번째다.
그러나 당시 수사 발표는 크게 다르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북한의 지령을 받아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민청학련을 조종, 국가를 뒤엎으려 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으로 기록돼 있다. 23명이 구속돼 8명은 비상보통군법회의를 거쳐 대법원의 확정판결을 받은 것이다.
숱한 자료를 섭렵했다는 '푸른 혼'과 당시 수사발표 중 어느 쪽이 옳을까. 국정원이 최근 재조사하겠다고 발표한 7대 과거사 중에 인혁당 재건위 사건도 포함돼 있다. 기왕에 하는 작업이니 정확한 진상이 밝혀지길 기대한다.
안성규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