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장 화제] 삼국유사 해설서 펴낸 향토사학자 이범교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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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도 출신이 '삼국유사'(三國遺事) 해설서를 펴냈다.

주인공은 향토사학자로 활동중인 이범교(53.포항시 오천읍.사진)씨다.

그는 최근 두 권짜리 '삼국유사의 종합적 해석'(전체 1080쪽.민족사)을 출간했다. 이 책은 독특한 편집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책을 넘기면 오른쪽에 원문이, 왼쪽에는 원문의 해석이 실려있다.

어려운 한자의 음과 훈이 원문 옆에 달려있고, 해석 아랫부분에는 옛 지명이나 등장 인물 등을 설명하는 주석이 있다. 복잡한 대목에는 관련 사진과 도표.지도.삽화를 실어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했다.

진병길 경주 신라문화원장은 "편집이나 내용 모두 아마추어의 솜씨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잘 만들어진 책"이라고 평가했다.

이씨는 1997년 삼국유사의 해설서 출간을 결심했다. 어느 사상가의 책을 읽다 '삼국유사와 동경대전의 역주를 다는 것이 꿈'이라는 대목을 보면서다. '얼마나 어렵기에… '라는 호기심이 생겨 삼국유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경북 봉화 출신으로 한양대 전자공학과를 나온 그는 대학 재학 때 사서삼경과 불교.법률.경제학 서적 등을 탐독하는 등 인문.사회과학에 심취했다. 그는 "대학 진학 후 전공을 잘못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학과를 바꾸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79년 포스코에 입사한 그는 인재개발원의 기술교육팀장을 끝으로 99년 사표를 냈다. 오로지 삼국유사 해설서를 쓰기 위해서였다. 생계는 초등 교사인 부인이 맡았다.

2001년 경주박물관의 삼국유사 강좌에 등록해 공부를 하며 책 쓰기를 시작했다. 포항 시내의 친구 사무실 한쪽을 얻어 집필실로 사용했다.

강좌를 듣거나 현장 답사를 위해 경주에 가는 날을 빼곤 매일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집필에 몰두했다.

"책을 펴낼 출판사가 있을지, 책이 나오더라도 전문가들이 어떻게 볼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다행히 내용이 좋다며 민족사 측이 선뜻 승낙해 빛을 보게 됐지요."

그는 포스코 근무 당시 사원 교육용 교재를 펴낸 것과 표.그래프 등을 이용해 보고서를 만들었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다고 했다.

이씨는 "삼국유사의 해석은 한문을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행간의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라 말하고 "삼국유사는 사상.정치세력.종교의 통합을 강조한 훌륭한 고전"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의미가 드러나는 것보다 상징성이 있는 고전을 읽으면 생각의 깊이가 달라지고, 경쟁력도 키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홍권삼 기자

*** 삼국유사

고려 충렬왕 때 고승 일연(一然)이 쓴 역사서. 5권 9편 144항목으로 고조선에서 후삼국시대까지 한국 고대사를 담고 있다. 고대사 전반을 체계적으로 엮은 것이 아니라 고승의 전기와 미담, 탑.불상 등 저자의 관심 분야를 기술했다. 향가 14수가 실려 국문학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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