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자폐아 가정의 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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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자폐아를 둔 가정은 재해를 입은 것과 같습니다." 자폐증이 있는 손자(8)를 둔 서울 강남의 한 할머니 고백이다. 그 말이 과장일까.

한번 따져보자. 지금까지 손자를 치료하느라 노부부와 자식 부부가 번 돈을 몽땅 쏟아 붓고도 모자라 아파트 한 채를 날렸다. 인천의 한의원에서 침도 맞히고 한약도 먹여봤다. 충남 조치원까지 가 손자에게 좋다는 식품을 사다 먹이기도 했다.

게다가 유치원도 못 보낸다. 다른 아이 부모가 "우리 애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반대하기 때문이다.

자폐아 부모들은 생후 두세 돌 무렵 자폐 진단을 받으면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라며 피눈물을 흘린다. 그때부터 모든 것을 쏟아 붓지만 초등학교 3~4년 무렵이면 거의 무일푼 상태가 돼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이때까지는 희망이 있다. 아이의 상태가 좋아지기 때문이다. 말도 제대로 못하던 자식이 단어를 이어서 문장을 만들면 부모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이 과정에서 부부 간 갈등으로 이혼하는 경우도 있다. 치료나 전문 교육기관들이 주로 서울 강남.송파 지역에 몰려 있기 때문에 지방에서 이사 오기도 한다. 저소득층은 더 괴롭다. 한 부모는 "돌보기가 너무너무 힘들어 수용시설로 보냈다"면서 "혹시 애를 데리고 가라고 할까봐 전화받기도 겁난다"고 털어놨다.

자폐아를 다룬 영화 '말아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계기로 자폐아 문제를 다룬 본지 보도(2월 19일자 1, 6면)를 읽은 한 독자는 "직업재활교육을 전혀 받지 않은 내 자식이 어떻게 세상을 헤쳐나갈지…"라고 하소연했다. 한 어머니는 "우리의 삶 자체가 '마라톤'"이라고 절규했다. 우리 사회는 과연 이들에게 뭘 해주고 있는가. 이렇다 할 정책도 없고, 전문가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우리 복지 수준의 현주소다. 한 독자는 "자폐 장애인도 사회의 구성원이다. 최소한의 지원을 해달라"고 했다.

정책 당국자와 국회의원에게 지금 '말아톤'을 상영하는 영화관에 갈 것을 권한다.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리고 나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가 어렴풋하게라도 떠오를 것이다.

신성식 정책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