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오만해졌다고요? 제대로 대접 못 받기 때문이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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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오만해진 건 맞지만 국제사회가 중국을 제대로 대접하고 있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반면에 중국 일부 사람들은 미국이 중국을 포위한다는 음모론을 믿어요.” 리청(李成) 미 브루킹스연구소 선톤차이나센터 연구주임이 지난 6일 김영희 대기자와의 대담에서 한 말이다. 미·중 모두에 정통한 전문가로 손꼽히는 리 주임은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창립 3주년 포럼에 참석하러 한국을 방문했다. 대담은 조찬을 겸해 시내 한 호텔에서 약 80분간 영어로 진행됐다.

◆중국 vs 미국, 그리고 음모론

리청 브루킹스연구소 선톤차이나센터 연구주임(왼쪽)과 김영희 대기자가 6일 오전 웨스틴조선호텔에서 대담을 마친 뒤 정원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조용철 기자]

김영희 대기자=최근 미·중, 중·일 관계가 심상치 않은데 중국은 무슨 생각을 하는 겁니까.

리청 연구주임=저는 ‘음모론’에 주목합니다. 한 중국 관리가 저에게 ‘중국엔 5가지 악(five evils)이 있다’고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대만 독립 문제, 티베트 독립 문제, 신장위구르 사태, 파룬궁 문제,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반체제 인사를 들었어요. 중국은 이들 5개의 문제를 미국이 조종한다고 느껴요. 중국의 부상에 위협을 느낀 미국이 음모를 꾸몄다는 거죠. 가령 달라이 라마의 미국 방문, 대만에 대한 무기 수출이 중국을 자극했어요. 미국에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섰을 때, 중국에선 새로운 미·중 관계에 대한 기대가 상당히 높았지만 결과적으로 지금 중국은 미국이 자신들을 위협으로 보고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됐습니다.

김=그런 생각의 근거는 뭡니까?

리=음모론의 저변에는 중국의 부상에 위협을 느낀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려고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어요. 적어도 미국이 중국에 협조적이지 않다는 느낌을 갖고 있지요. 미국이 중국에 경제에서는 도움을 구하면서도 정치적 문제에선 협조를 안 한다는 생각을 하는 거지요. 중국은 세계무대에서 이제 헤드테이블에 앉고 싶어 합니다. 경제성장 등 성과를 볼 때 충분히 그럴 만도 해요. 물론 자신감이 오만이 되기도 합니다. 중국의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은 항상 겸손하고 자신을 낮추었지요. 중국이 역사의 교훈으로 삼을 부분입니다.

김=우리들은 권력이 미·중에 균등하게 배분된 질서 속에 살게 됩니까?

리=아직 그 단계까지는 가지 않았다고 봅니다. 제 생각엔 아직 미국이 유리해요. 중국은 초조합니다. 미국이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마무리하고 나면 어떻게 될지 걱정이 많아요.

김=미국 하원이 위안화 환율 절상을 거부하는 중국에 무역 보복을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어요.

리=그건 미 의회의 과잉대응이었어요. 중국에는 위안화 절상을 하지 않는 타당한 이유가 있는데도 그런 법안을 통과시킨 건 공정하지도 않고 비현실적입니다. 그런 게 음모론을 자극해요. 저는 중국의 외교정책에 대해서도 상당히 비판적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충돌을 막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선 국제사회와 중국이 함께 가야 합니다.

◆ 신냉전시대 와서도 안 되고, 오지도 않는다

김=지난 3월 천안함 사건 이후, 중·러는 북한과, 미·일은 한국과 편가르기를 하는 움직임이 읽힙니다. 냉전시대의 대결의 재판이 등장하는 건 아닌지 걱정입니다.

리=신냉전시대는 와서도 안 되고, 오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신냉전은 미·중·일·한 모두의 이익에 부합하지도 않습니다. 냉전시대와는 달리 중국은 이미 국제사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주요 멤버입니다. 한·미·일·러의 지도자들이 현명하다면, 중국을 적이 아닌 친구로 삼아야 해요. 경쟁은 하되 적으로 돌려서는 안 돼요. 중국에도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어요. 젊은 세대들, 특히 상하이에 거주하는 젊은이들은 한·미·일의 동세대들과 같은 음악을 듣고,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합니다. 적어도 그들만큼은 서로 친구가 될 수 있어요.

김=북한의 유례없는 3대 세습에 중국이 짜증스러워하지 않나요?

리=부끄럽다기보다는, 글쎄요, 왜 중국이 계속해서 북한을 지지할까 궁금하게는 만들지요. 중국 외교의 큰 원칙은 ‘불개입’이라는 겁니다. 북한은 사회주의 동생 격이고, 중국의 이미지를 갉아먹기는 해도 개입하지 않는 거지요. 재미있는 건 중국 국민들은 북한을 싫어한다는 겁니다. 중국 지도부도 그래요. 이건 비밀이 아닙니다. 그들은 한국을 좋아합니다. 한국과 관계를 더 좋게 하고 싶어 하지요. 모든 게 천안함 사건으로 물거품이 됐습니다. 한국은 지금 미국과 동맹을 더 공고히 해야 하는 입장이니까요. 중국이 왜 저런 행동을 할까, 중국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서 문제를 보는 게 필요합니다.

김=중국이 한반도의 통일을 원치 않는다는 견해에 대해선 어찌 보십니까?

리=가장 중요한 것은 중국이 북한 문제에서 쥐고 있는 레버리지와 협상력이 한반도가 통일될 경우 증발한다는 점입니다. 미국과의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잃어버리게 되고,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더 고립될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여기에다 북한이라는 중국의 동맹국도 사라지게 되지요. 만약 북한이 미국의 손아귀에 떨어진다면 중국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됩니다. 중국인들이 느끼는 음모론도 여기 관계돼 있습니다. 그래도 중국이 과잉대응하는 면이 없진 않지요.

◆중국이 곧 맞이할 ‘진실의 순간’

김=중국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어요.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임기도 2012년에 끝나고 새로운 지도자가 들어섭니다. 중국은, 그리고 주변 세계는 어떻게 달라집니까.

리=중국의 당면 과제는 일당지배체제입니다. 북한 말고 오늘날 세계에서 일당독재는 매우 드물어요. 하지만 중국의 공산당 안에는 여러 당파 세력이 강하게 서로를 견제하고 있어요. ‘퇀파이’(團派·공산주의청년단파)가 중심이 된 대중 그룹이 있고 고위 관료 자제가 중심이 된 태자당(太子黨) 등이 이끄는 엘리트 그룹이 있지요. 대중 그룹의 리더는 리커창(李克强) 상무 부총리, 엘리트 그룹은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이 있지요. 여기에 해외 유학파인 ‘바다거북(해외 유학파=‘海龜)파’도 있어요. 다이내믹합니다.

김=그 변화는 언제 옵니까?

리=저는 약 10년으로 잡고 있습니다.

김=다음 리더로 시진핑 부주석이 확정적입니까?

리=그렇지 않으리라는 관측도 있어요. 시진핑 부주석이 아니라면 누구인가에 대해선 선뜻 답을 내놓기 어렵지요. 리커창 부총리는 유약하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시진핑 부주석은 한편 ‘신중국’을 이끌 수 있는, 민주주의적 중국을 이끌 첫 번째 지도자가 될 수 있으리라 봅니다.

김=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리=국제적 명성이 높은 김 대기자와 대담을 나눌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정리=전수진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리청(李成)박사=상하이 출생으로 1985년 미국에 유학, 프린스턴대학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리 박사는 차이나쿼털리와 포린폴리시 등 저명한 학술지에 중국 지도자 문제에 관련해 100여 편의 글을 발표하는 등 중국 리더십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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