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오판으로 북 대화파 입지 축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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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렬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대사는 인터뷰 직전 "개인 의견이 아니라 10일 외무성 성명의 내용을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성명이 나온 뒤 응했던 인터뷰에서 '6자회담은 올드 스토리(old story.낡은 이야기)'라고 한 말의 맥락이 일부 잘못 전달돼 오해를 일으켰다"며 "(성명 이후 나온 북한 각급 기관의 발언보다) 외무성 성명이 판단의 기준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성명을 낸 배경은.

"우리는 (조지 W 부시 대통령 재선 이후) 인내성있게 미국의 태도를 주시해 왔다. 그러나 미국이 내놓은 발언들을 검토한 결과 미국의 정책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발언들을 검토했다니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부시 대통령의 취임사.연두교서와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의 상원 인준청문회 발언을 문구뿐만 아니라 글자와 글자 사이(행간)까지 다 따져보았다. '북한과 공존한다'든가 '새(대북)정책을 펴겠다'는 말은 단 한마디도 없었다. 오히려 '미국의 첫째 목표는 폭정 종식과 폭정의 잔존 기지 제거'라고 했다. 그 목표를 위해 어떤 수단도 배제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한마디로 미국식 가치관을 따르는 한가지 모양새로 세계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 건 핵무기까지 포함한 무력으로 우리를 전복시키려는 분명한 의사 표시다."

-북한도 협상의 여지를 보여야 하지 않나.

"우리는 연초 방북한 커트 웰든 등 미 의원단에 '핵문제 배경에는 우리의 반미 정책이 깔려있다' '미국이 우리 제도에 대해 시비걸지 않고 내정 간섭하지 않으면 우리도 반미하지 않고 우방으로 지내겠다'고 말해줬다. 그런데 미국이 이를 오판한 것 같다. 우리가 약점을 드러낸 것으로 잘못 판단하고 계속 몰아붙이고 있다. 미국이 정책을 철회하면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대화에 응할 수 있다. 우리 성명 말미에 나오는 '대화를 통한 해결'과 '조선반도 비핵화'원칙은 불변이다. (미국의 적대시 정책에 맞서) 비핵화 원칙을 달성하려면 일정 기간 우리 제도를 수호하는 게 불가피하지 않겠나. 미국이 우리 제도를 전복하겠다고 위협하면 핵무기를 가질 수밖에 없다. 어떤 의미에선 우리가 핵보유를 할 수밖에 없게끔 (미국에 의해)몰린 것이다. 'We are forced to'인 것이다."

-미국과의 대화를 주장하는 북한 내 인사의 입지가 좁아졌다는 뜻인가.

"그렇다."

-북한의 핵보유 선언을 한국 정부는 '협상용'이라며 무시하고 있는데.

"협상용이라 생각한다면 할 일이 없을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될 것이다. 만일 정말 우리에게 핵무기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협상하면 될 것이고. 한국 판단에 맡긴다."

-북한 관영 중앙방송은 "있지도 않은 핵 및 미사일 위협설"이라며 외무성 성명과는 다른 발언을 했는데 어느 쪽이 맞나. 북한 내부에 혼선이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핵무기와 미사일 전문가가 (북한 내에)얼마나 되겠나. 한국은 발언 하나하나에 일희일비 하지 말고 외무성 성명을 기준해 판단하면 된다. 나랑 인터뷰할 시간에 성명을 한 글자라도 더 연구하는 게 도움이 될 것이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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