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18년째 '사무실 무사고' 듀폰코리아 서울 사무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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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 듀폰 서울사무소는 직원들이 복도 모퉁이에서 부딪혀 다칠까봐 볼록 거울까지 달아 놓았다. 신인섭 기자

서울 역삼동에 있는 화학 및 종합과학 회사인 듀폰 서울사무소의 사무실에는 복도가 꺾어지는 모퉁이에 동그란 볼록 거울이 달려 있다. 거울을 통해 꺾어진 쪽에서 누가 오고 있는지 훤히 보인다. 거울을 설치한 이유는 충돌로 인한 부상을 막기 위해서다. 회사 측은 뜨거운 커피 등을 들고 가다 모퉁이에서 부닥치면 다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무실 문 앞에는 '위험 지역' 표시가 있다. 다른 부분 바닥 카펫은 옅은 회색인데 위험 지역은 짙은 회색이다. 그 안에 서 있으면 누군가 갑자기 문을 열어 변을 당할 수도 있으니 들어가지 말라는 표시다. 또 바닥이 타일로 된 화장실 입구에는 '미끄럼 주의' 표지판을 세워 놓았다. 공장이 아니라 사무실인데도 '안전, 목표는 완전 무사고(Safety, the Goal is 0)'라는 표어가 곳곳에 달려 있다. 이는 '직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듀폰의 기업 이념 때문이다.

사무실이나 생산현장의 안전을 위한 조치들은 각 나라에 있는 법인마다 다르다. 각 사업장은 직원들 10명 내외로 '안전위원회'를 만들어 어떤 조치를 할 것인지 결정한다. 사무실 복도 모퉁이에 볼록 거울을 단 것은 한국밖에 없을 것이라고 한다.

듀폰 본사는 각국의 무사고 사업장에 매년 말 상도 준다. 다쳐서 결근한 직원이 한 명도 없으면 상 받을 후보가 된다.

현재 직원이 180여명인 듀폰 서울사무소는 시상 제도가 생긴 1987년부터 지난해까지 18년 내리 상을 받았다. 상금은 직원 1인당 40달러(약 4만원)다. 서울사무소의 안전위원회는 직장에서뿐 아니라 운전이나 생활(off the job) 안전 수칙도 세워 놓고 따르게 한다. 운전의 경우 한국 법인은 아예 필기와 실기 시험을 거쳐 '듀폰 면허'라는 것을 따도록 했다. 여기에 합격해야 회사 일로 자기 차를 썼을 때 기름값을 준다. 필기 문제는 괄호 넣기로 15쪽 내외의 A5크기 책 네 권을 풀어야 한다. 내용은 안전 운전 지침이다. 예컨대 '보행자가 무단횡단을 해도 ○○해야 한다'라는 문장의 공란을 채우는 것이다. 정답은 '양보'다.

실기는 회사 차량 전문 운전자가 옆에 앉아 시내를 주행한다. 합격 기준은 방어 운전이다. 안전벨트를 매는 것은 기본. 다른 차가 갑자기 끼어들 때 경적을 울리면 탈락하고, 지하 주차장에서는 반드시 전조등을 켜야 한다. 김숙경 부장은 "1년에 서너 차례 안전운전 강좌를 열어 주의를 환기시키기도 한다"면서 "직원이 자동차 사고를 냈다는 얘기를 거의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94년 서울 광화문에서 지금의 사옥으로 이사 올 때의 일. 새 건물에 임대료도 비싸지 않은 후보지가 있었다. 그러나 건물이 소방서 바로 옆에 있었음에도 '스프링클러가 없다'는 이유로 퇴짜를 놨다.

90년대 후반에는 한 부서가 강원도 영월군 동강 래프팅을 가려 했으나 싱가포르의 아시아 안전 담당 임원이 보고받고는 '아직 안전이 확실치 않다'고 제지해 못 간 적도 있다. 회사 측은 단합 대회에 가서 운동 시합을 할 때도 '지나친 승부욕을 절제하고 참가에 의의를 가질 것'을 주문한다. 또 집에서는 가열 기구가 있는 부엌에 소화기를 놓을 것 등 집안 안전을 위한 권장 사항도 만들어 자율 실천토록 하고 있다.

듀폰은 안전 경영 경험을 바탕으로 99년 세계 기업에 대한 안전 컨설팅 사업을 시작했다. 미국 정부기구인 에너지부, 항공우주국(NASA), 대기업인 GE.존슨 앤드 존슨 등이 듀폰의 컨설팅을 받았다. 서울사무소는 2002년 안전 컨설팅을 시작했으며, 포스코.LG화학.현대산업개발.삼성엔지니어링 등을 자문했다.

글=권혁주 기자<woongjoo@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shin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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