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혁신학교’는 실험중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용인 흥덕고는 교복 디자인은 물론 수학여행 장소, 생활규범까지 학생들이 참여해 결정하는 혁신학교다. 사진은 지난 3월 생활규범을 만들기 위해 학생들이 토론회를 하는 모습. [흥덕고 제공]

#1일 오전 10시쯤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흥덕고교. 가수 ‘미쓰에이(missA)’의 노래 ‘베드걸 굿걸(Bad Girl Good Girl)‘이 학교에 울려 퍼지자 학생들이 서둘러 교실로 들어갔다. 수업이 시작된 것이다. 이 학교는 차임벨 소리가 아닌 대중가요로 수업을 시작한다. 학생들의 선택이다.

흥덕고는 ‘학생들이 만드는 학교’다. 교복 디자인도 학생들이 선택했고 학교 규범도 학생들이 토론해 만들었다. ‘0교시’도 ‘야자(야간자율학습)’도 체벌도 없다. 머리 모양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수학여행 장소와 일정까지 토론과 투표를 통해 결정한다. 이범희 교장은 “처음에는 걱정했으나 이제는 학생들의 선택을 믿고 이해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성남시 분당구 보평초등학교는 지난 3월부터 3개의 미니초등학교를 실험하고 있다. 1~2학년은 기초생활교육을 강조한 ‘배움스쿨’, 3~4학년은 교과서 내용 이해를 강조한 ‘나눔스쿨’, 5~6학년은 자기주도학습을 강조한 ‘보람스쿨’ 등 수석교사가 책임지는 소교장제가 진행 중이다. 서길원 교장은 “학생 개개인에게 맞는 창의적인 교육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흥덕고와 보평초교는 경기도교육청이 운영하는 혁신학교다. 혁신학교는 지난해 5월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 취임하면서 추진한 핵심 사업 중 하나다. 학년당 6학급 이하, 학급 인원 25명 이하의 작은 학교에 학교 운영과 교육 과정의 자율권을 주고, 연간 1억~2억원씩 4년 동안 집중 지원한다. 혁신학교는 학교 운영위원회가 교장을 뽑을 수 있다. 교장은 자신과 함께 뜻을 펼칠 교사를 전체 교사의 30% 범위 안에서 초빙할 수 있다. 교사들이 교육에 집중하도록 교무보조인력, 상담전문교사도 배치한다.

경기도의 혁신학교는 초·중·고교를 합쳐 43개다. 지금까지는 반응이 좋다. 지난해 2학기 혁신학교로 지정된 양평 수입초등학교는 6개 학급 62명에서 6개 학급 106명으로 늘었다. 군포 둔대초등학교는 7개 학급 95명이 8개 학급 180명으로 바뀌었다. 올해 개교한 성남 보평초등학교는 개교 당시 13개 학급 400여 명이던 학생이 현재 30개 학급 1124명이 됐다. ‘혁신학교가 있는 지역은 전셋값이 달라진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문제는 학생들이 많이 몰리면서 교육 여건이 나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혁신학교가 전학 오는 학생을 위해 컴퓨터실, 가사실 등의 특별실을 교실로 바꿨다.

도교육청은 혁신학교를 2011년 100개교, 2012년 150개교, 2013년에는 전체 학교의 10% 수준인 200개교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그러나 일반 학교와의 형평성 문제와 4년간의 예산·행정지원이 끝난 뒤에도 지금처럼 ‘실험’을 계속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윤환 경기도교원단체총연합회 정책위원장은 “혁신학교가 좋은 학교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일반 학교는 상대적인 박탈감에 시달리고 있다”며 “모든 학교가 골고루 발전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기도교육청 김국회 장학관은 “혁신학교 프로그램을 체계화하고 교육 실험 경험을 공유할 수 있도록 전문 연수기관을 설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모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