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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cover story] 태안 황도 붕기 풍어제 그 신명난 현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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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 땅!"

대나무 장대에 매단 오색 깃발을 든 열다섯명의 선주들이 논두렁길을 힘껏 내달린다. 30여m 앞 당집이 목표다. 어라, 그런데 장난이 아니다. 살을 에는 칼바람 속에서 무거운 깃발을 들고 뛰는 시늉만 낼 법도 한데 죽자살자 달린다. 당집 앞에 모여 있던 주민들도 과연 승자가 누굴까 촉각을 곤두세운다. 뭔가 있나 보다.


1등하면 올 한해 물고기 풍년 예약이라는데 젖먹던 힘까지 내서 달려야지. 꼴지라도 열심히 뛴 만큼 고기가 잡히겠지. 그래서 1등도 꼴지도 즐거운 풍어제.

흡사 올림픽 육상 100m 레이스를 연상시키는 이런 풍경은 음력 정월 초이튿날 충남 태안군 안면읍 황도리에서 해마다 벌어지는 일이다. 언제 시작됐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일흔이 넘어 보이는 한 노인은 "태어나서부터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봐 왔어. 그러니 적어도 70년은 넘은 거 아녀?"라며 껄껄 웃는다. 깃발을 들고 죽어라 뛰는 이유는 신령을 모신 당집에 가장 먼저 뱃기를 꽂으면 그해 더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정말 그럴까, 아니 그랬을까. 숨을 헐떡거리는 1등에게 슬며시 다가가 물었다. "고기 많이 잡힌다는데 맞나요." "예끼 여보슈, 정말 그러면 육상선수를 고용해 달리지. 그냥 하는 소리 아니겠어. 그래도 꼴등을 하는 것보단 기분 좋으니 혹시 모르지."

황도 붕기 풍어제. 어업이 주업인 이 고장의, 오래전부터 내려온 마을제다. '깃발 뛰기'는 이틀 동안 열리는 마을제의 하이라이트인 셈. 사람의 심리란 역시 경쟁이 치열하고 몸이 부딪쳐야 흥도 나고 관심도 쏟아지게 마련인가 보다. 그래도 1등을 못 했다고 아쉬워하지 않는다. 뱃기를 먼저 꽂은 사람을 시기하지도 않는 모양새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 150여 주민과, 또 마을제를 구경삼아 온 이웃 주민들은 당집으로 우르르 몰려간다. 제물로 잡은 황소 고기를 나눠 먹고, 노래도 하고 막걸리를 마시며 한데 어울린다. 틈틈이 제사를 지내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그렇게 꼬박 밤을 새운다.

이곳 사람들은 이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요량이란다. 알 듯 모를 듯, 기묘한 황도리의 1박2일을 week&이 함께했다. 과연 무슨 일이 있었기에….

황도=최민우 기자<minwoo@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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