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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욱 대기자의 경제 패트롤] 환율 대응 ‘지켜보기 전략’이 필요한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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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최근 흐름의 기저에는 미국이 추가적인 양적 완화조치를 취할 것이란 기대감이 깔려 있다. 어느 나라건 경기 동향은 선거를 앞둔 집권당의 주요 관심사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는 미국 오바마 정부로선 지지부진한 경기회복을 부추길 필요성을 느끼는 게 당연하다. 양적 완화의 고민거리인 물가는 지난 주말 발표된 개인소비지출 물가지수가 4개월 연속 0.1% 상승에 그치는 등 안정된 모습을 이어가고 있다. 다음 달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추가 양적 완화조치가 취해질 것이란 시장 예측이 더욱 강화되는 배경이다. 미국의 양적 완화정책 자체가 다른 통화에 절상 압력으로 작용하지만, 여기에 한술 더 떠 지난주 미 하원은 ‘공정무역을 위한 환율개혁법안’을 통과시켰다. 정치적 의도가 농후하고 보호무역을 촉발할 위험성이 큰 이 법안이 정말로 입법화될 것이라고 보는 의견은 미국 내에도 별로 없다. 하지만 현재의 환율 수준, 특히 중국 위안화에 대한 미국 내의 강한 불만기류를 보여주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중국이 지난 주말 세계무역기구(WTO) 회의 등을 통해 ‘미국이 양적 완화를 통해 타국 통화에 대한 달러가치를 끌어내리는 정책을 펴고 있다’고 비판하면서도 미미하나마 위안화 절상 기조를 유지하고 ‘위안화 탄력성 확대’를 반복해 밝히고 있는 것도 이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난 6월 변동환율제 복귀 이후 여전히 3%에도 못 미치고 있는 위안화 절상폭이, 미국 등이 생각하는 ‘상당한 저평가’를 시정하는 수준으로 여겨질 리는 없다. 중국도 내수 기반 강화 등을 위해 위안화 절상이 필요하다는 내부 인식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과거 일본이 플라자합의를 통해 엔화 강세를 수용한 것이 결국 자산거품 붕괴와 20년 경기침체로 이어졌다는 생각 때문에 ‘외압에 의한 통화가치 시정’엔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당분간 미·중의 힘겨루기는 이어지겠지만 ‘미미한 위안화 절상’이란 현 기조에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는 여겨지지 않는다. 한국의 대응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미국의 양적 완화로 풍부해진 유동성 중 일부가 한국으로 들어와 주식·채권을 사들이고 원화 강세를 초래하는 현 구도는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관건인 환율의 경우, 경상수지가 예상을 뛰어넘는 흑자를 내고 있고 그 배경에 원화 저평가가 자리한다는 것이 해외의 일반적 인식인 상황에서 개입하기엔 매우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게다가 다음 달에는 서울에서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리고, 좋건 싫건 환율문제가 주요 현안으로 부각될 듯한 상황이다. 하지만 원화가치 상승은 요즘 불거지는 물가안정에는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고, 연말 예상되는 1달러=1100원도 크게 부담스러운 수준이라 말할 순 없다는 점에서 당분간 지켜보는 전략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박태욱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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