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외교 발언 배경] 북핵 해결 전략 한·미 발맞추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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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전 6시30분 1주일간의 방미 일정을 마치고 인천공항에 도착한 반기문 외교부 장관은 한남동 공관에 잠시 들러 옷만 갈아입고는 곧바로 외교부 청사로 향했다.

이날 오전 내외신 기자회견이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회견은 이틀 전 갑자기 결정됐다. 반 장관이 "귀국해서 뭔가 할 말이 있다"며 회견 준비를 지시했다고 한다.


2005년 재외공관장회의가 16일 서울 외교통상부 청사에서 열렸다. 회의를 마친 뒤 열린 오찬에서 라종일 일본 대사의 제의로 반기문 외교부 장관, 이해찬 총리, 홍석현 주미 대사, 김재섭 주러 대사(왼쪽부터)가 건배하고 있다.오종택 기자

발언 수위는 예상 외로 높았다. 외교적.평화적 해결원칙을 거듭 강조하면서도 곳곳에 가시 돋친 대 북한 언급이 이어졌다. 회견장 주변에서 "정부의 대북전략이 강경으로 선회하는 것 아니냐"는 수군거림이 나돌 정도였다. 외교부는 "원론적 수준의 얘기일 뿐, 확대해석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했지만 미묘한 파장은 이후에도 한동안 지속됐다.

◆ 미국과 보조 맞추기=반 장관의 이날 발언은 다분히 미국을 의식한 행보로 판단된다. 북한 외무성 성명 이후 전 세계의 관심은 단연 미국 정부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쏠려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당분간 대북경협 및 지원에 신중을 기해달라는 미국의 요구를 마냥 외면할 수만은 없었다는 것이다. "북핵 문제 해결없이 대규모 경협은 없다" "6자회담 복귀 조건은 있을 수 없다"는 등의 발언이 대표적 사례다. "한.미 동맹에 바탕을 둔 정책공조가 최선책"이란 정부의 현실적 판단도 이날 반 장관 발언의 주된 배경이 됐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이런 입장을 중국을 통해 북한에도 정확히 전달한다는 방침이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의 입장을 이해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다"며 "북한이 강하게 나갈수록 되레 포위만 당할 것임을 납득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 실제 압박엔 신중=하지만 이런 발언이 향후 정부가 강온 전략을 병행하는 것처럼 해석되는 것은 극구 경계하는 모습이다.

반 장관도 이날 회견에서 "인도적 견지에서 제한된 수준의 쌀과 비료를 남북 신뢰회복 차원에서 제공해왔다는 설명에 대해 어느 미국 측 인사도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며 "우리는 이를 미국이 우리 정부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북 압박정책 논란에 대해서도 "미국 내 일부 학자나 언론에서 제기하는 것일 뿐, 실제 정부 차원에서는 전혀 그런 얘기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도 이날 한 조찬강연에서 "현 상황에서 북한에 대한 제재나 압박을 논의하는 것은 너무 성급하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북핵 해법 마련을 위한 행보를 가속화할 태세다. 반 장관이 이날 리자오싱(李肇星) 중국 외교부장과 전화통화를 한 데 이어 이달 하순엔 한.미.일 3자협의회를 열 계획이다. 러시아와도 별도의 회동을 추진 중이다.

◆ 재외 공관장회의 개막=전 세계 103개국 재외 공관장들도 이날 한자리에 모여 북핵 해법을 집중 논의했다. 16~18일 외교부 청사에서 열리는 '2005년도 재외 공관장회의'에서다. 첫날엔 개회식에 이어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 진대제 정통부 장관, 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 등의 비공개 특강이 이어졌다. 외교부 혁신과제를 놓고 밤늦도록 난상토론도 벌였다.

박신홍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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