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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서 삼고초려 … 정치 생각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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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뜻밖의 감사원장·총리 제의가 오는데 결코 맡고 싶지 않은 자리였다. 속된 말로 무슨 팔자가 이렇나 하는 생각도 했다.”

“(총리직은) 청와대에서 삼고초려한 게 맞다.”

“군대 문제가 있는데도 왜 저를 그렇게 쓰시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대통령을 뵈면 한번 물어봐야겠다.”

29일 국회의 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 첫날. 김황식(사진) 총리 후보자는 야당 의원들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총리직 고사’ 속내를 털어 놓으며 검증 예봉을 피했다. 민주당 정범구 의원이 “원하지 않는 자리에 갔다는데 그럼 후보자의 의지는 어디 있느냐”고 되물었을 정도다.

야당 의원들은 이날 병역 기피 의혹을 집중 추궁했다. 민주당 최영희 의원은 “1971년 법이 개정돼 부동시가 면제 사유가 되자 법을 잘 아는 김 후보자가 72년 부동시로 면제받은 것 아니냐”고 따졌다. 이에 김 후보자는 “72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안경점에 갔다가 ‘이렇게 짝눈이 심하냐’는 얘기를 듣고 부동시를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야당은 “김 후보자가 총리가 되면 이명박 대통령,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에 이어 총리까지 병역면제 3총사가 되는 진기록”(민주당 김유정 의원)이라고 공세를 확대했다.

또 김유정 의원은 “2007년 4월 20일 김 후보자 통장에서 1억2400만원이 출금됐는데 이날은 김 후보자 딸이 구입한 아파트의 소유권 이전등기를 한 날”이라며 “딸이 치른 잔금에 이 돈이 쓰인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증여세 탈루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창조한국당 이용경 의원은 “감사원장 공관의 7급 직원이 김 후보자 부인의 운전기사를 했다”고 주장했다. 김 후보자는 “본래 해당 직원 업무에 공관 관리와 운전이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야당은 김 후보자가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 피격 사건 다음날(2008년 7월 12일, 토요일) 대법관 신분으로 골프를 친 것도 문제 삼았다.

김 후보자는 4대 강 사업 감사와 관련, “사업을 중단시킬 만한 부당한 사항은 없다”고 말했다. 군 가산점제 재도입에는 “군 가산점제는 상징적 의미가 있어 최소한의 부분에서 반영하는 게 옳다고 본다”고 답변했다. 한나라당 이정현 의원이 “총리를 잘한 뒤 대통령 출마를 제안받는다면”이라고 묻자 김 후보자는 “정치를 할 생각은 없다”고 강조했다. 이 의원이 “국무총리실 공직윤리관실에서 감사원 간부에게 어디를 감사하라고 월권 행위를 자행했다고 한다”며 청부감사 의혹을 제기한 데 대해선 “보고받은 바 없다”고 부인했다.

◆민주당 의원의 민주당 지도부 비판=이날 정범구 의원은 의사진행 발언을 신청, 전날 청와대의 여야 지도부 초청 만찬을 거론하며 박지원 원내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의 ‘호남 출신 김 후보자’에 대한 ‘배려’를 공개 비판했다. 그는 “총리 후보자를 검증할 (여야) 수뇌부가 청문회를 16시간 남겨 놓지 않은 시점에 대통령과 술과 밥이 곁들인 자리를 갖는 것은 적절치 않다. 야당인 민주당은 더욱 그렇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민주당 소속인 문희상 특위 위원장에게 “이 문제에 대해 적절한 유감을 표명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날 김 후보자가 총리 지명 이틀 전(14일) 국회에서 박지원 원내대표를 만나 나눈 얘기도 상세히 공개됐다. 김 후보자는 “당시 ‘박 대표께서 (제게) 관심을 표명해 주신 것은 고마운데 저로서는 당혹스럽다’는 맥락으로 얘기했다”고 밝혔다.

채병건·강기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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