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 기획] 中. "무슨 일이나 시켜만 주시면…"식 답변은 감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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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는다

# 준비된 여성 인재 뽑았다

경상대 기계항공공학부 출신인 정소인(24.여)씨는 지난해 초 진로를 놓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당시 한 기업 마케팅 직에 합격해둔 상태에서 LG전자 연구직에 원서를 냈다. '여성 직업으로는 마케팅 직이 괜찮은데 전공과 취미는 엔지니어 쪽이고…'. 결국 자신이 준비해온 길을 가기로 했다. 그는 졸업 작품으로 냉장고와 온장고를 결합한 냉.온장고를 직접 제작해보기도 했었다. 그는 LG전자 면접에서도 "여성 엔지니어도 남성보다 잘할 수 있다"는 점을 자신있게 답변해 디지털가전사업본부 에어컨연구소에 합격했다. 당시 면접위원장은 정씨 평가란에 '똑 소리 나는 여성'이라고 적었다.

이화여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방은비(24.여)씨의 평균 학점은 B. A학점으로 '무장'한 경쟁자들을 제치기엔 뭔가 모자란다고 생각해 졸업을 앞두고 KT.한국전력에서 인턴 경험을 쌓았다. KT 인턴 때는 각종 디지털 콘텐트의 저작권을 스마트카드로 인증.관리할 수 있는 비즈니스모델 아이디어를 내 특허도 출원했다. 결국 그는 170대의 1의 경쟁을 뚫고 지난해 KT에 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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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를 보여줘야

강태광(25)씨는 제주대 공업디자인학과 출신이다. 학점도 3.0에 못 미친다. 지방대라는 약점에 학점마저 부실한 그가 지난해 세계적인 MP3 플레이어 업체인 레인콤에 들어갔다. 면접 때 콧수염을 기른 채 청바지 차림으로 나서 '튀는 놈' 덕을 보긴 했지만 그보다는 창의력을 인정받았기 때문. 입사 시험 때 차세대 MP3에 관한 기획서를 제출해 채용 담당자의 눈에 든 것이다.

메모리칩 없이 무선통신으로 음악파일을 실시간 재생할 수 있는 MP3 플레이어 개발안이었다. 레인콤 양덕준 사장은 "저런 친구와 벤처를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말했다. 강씨는 "적성에 맞는 전문분야에서 깊이 준비한 것이 도움이 됐다"고 했다.

# 다양한 경험도 득이 된다

삼성전자는 10년 만에 대학을 졸업한 늦깎이(익명 요구)를 뽑았다. 그는 서울의 중위권 대학 공대 출신. 학점도 거의 바닥권. 대신 그는 소외계층 봉사활동 등 다양한 사회 경험을 하면서 남에게 없는 능력을 하나 익혔다. 지르박.탱고.힙합 등 모든 종류의 댄스 실력이다. 삼성전자 임원이 면접에서 "춤 한 번 춰보라"고 주문하자 자신의 춤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삼성전자 임원은 "면접에서 학점이 좋은 사람일수록 서클활동.봉사활동 등 다양한 경험에 대해 더 많이 물어본다"면서 "이 늦깎이 신입사원의 경우 인생 경험이 업무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해 뽑았다"고 말했다.

# 남이 안 가는 길을 골랐다

고려대 지구환경과학부를 졸업하고 지난해 현대오일뱅크에 입사한 고소리(26.여)씨. 항공유 직매 담당인 그는 정유업계 최초의 여성 영업사원이다. 그는 취업 준비를 하면서 "몇 개 기업에 집중해 전력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정한 목표는 영업직. 몇몇 기업 홈페이지의 채용 정보를 분석했다. 독특한 자기소개서도 준비했다. '나는 몸짱'이라는 제목으로 왜 자신이 영업직에 맞는지를 풀어낸 것이다. 현대오일뱅크 인사팀 관계자는 "고씨의 자기소개서 일부 내용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고 말했다. 고씨는 "전략 대상을 정해 매진한 것이 주효했다"면서 "취업난을 깨기 위해 다양한 분야에 여성들이 발을 들여놓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 떨어진다

# 무성의하면 우선 탈락

"'KT가 뭐 하는 회사냐'고 물어보는 지원자도 있더군요."

KT 인사팀 관계자는 "지원해 놓고 그 정도 정보도 찾아보지 않았다는 것은 상식 이하 아니냐"면서 "이런 지원자는 학점이나 어학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불합격 처리한다"고 말했다. 인사 담당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유형이 '무성의형'이다. 이런 지원자는 자기소개서에서 잘 드러난다.

어느 기업에 제출해도 무난한 형태의 자기소개서를 만들어놓고 기업 이름만 바꿔가며 이곳저곳에 뿌리곤 한다.

인터파크 김철수 인사담당 상무는 "해당 기업과 자신의 역량에 대한 분석이 없는 게 무성의한 자기소개서의 공통점"이라며 "이렇게 쓴 사람은 우선적으로 탈락시킨다"고 말했다.

# 혼자 잘나도, 혼자 못나도 감점

지난해 하나은행 신입사원 공채 현장. 집단토론에서 지원자들은 10명씩 그룹을 지어 20분간 토론을 벌였다. 각자 2분 정도의 발언 시간을 얻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항상 말 많은 사람이 있게 마련. A씨가 5분이 넘게 이야기를 늘어놓는 바람에 한마디도 못한 B씨도 생겼다. 최하점을 받은 사람은 B씨였다. 하나은행 이강휴 임원부속실 팀장은 "흐름을 잘 타지 못해 발언 기회를 못 잡는 사람, 기회가 와도 엉뚱한 이야기만 하는 사람은 최하점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다음으로 나쁜 점수를 받은 사람은 A씨. 집단토론에서 평가의 주안점은 '얼마나 남과 잘 어울리며 해결 방법을 찾아나가는가'다.

발언 기회를 독식하면 남을 배려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보이기 쉽다. 남의 발언 중간에 말을 자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 "뽑아만 주시면 무슨 일이든…"

지난해 현대오일뱅크 영업 분야에 지원한 C씨. 서울 모 대학 경영학과를 좋은 성적으로 졸업했고 토익 점수도 우수했다.

▶심사위원= 전공 성적이 좋은데, 경영지원 업무를 해도 좋겠네.

▶C씨= 예. 경영지원 일도 잘할 수 있습니다.

▶심사위원= 영어를 잘하니까 해외 영업도 가능하겠군.

▶C씨= 시켜만 주십시오.

▶심사위원=그럼 왜 영업을 지원했나.

▶C씨=….

C씨는 탈락했다. 왜 영업을 지원했고, 영업 분야에서 어떤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지 설명하지 못했기 때문. 현대오일뱅크 송영상 인사부장은 "기업에서 원하는 것은 모든 분야를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아무거나 시켜만 주십시오"라는 사람을 보면 '이 친구는 다른 회사에 가서도 저렇게 말하겠군'하는 생각이 들어서 신뢰가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 베끼고 달달 외고

"포기는 배추를 셀 때 쓰는 단어. "

'내 인생에 포기(抛棄)는 없다'는 뜻으로 취업 관련 사이트에 많이 떠도는 표현이다. "내 묘비명은 '웃고 살다 가다'다" "내가 사는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바라던 내일" 등도 많이 쓰이는 표현이다. 만약 이 같은 표현을 자기 소개서에 인용했다면 떨어질 확률이 크다. 대기업 인사담당자들은 "취업 사이트 등에서 유행하는 문구를 너도나도 인용하는 바람에 그 문구만 봐도 '식상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자기소개서 10% 정도에서 이렇게 '베낀 문구'를 발견했다고 한다. 한진해운 양국 인사과장의 추가 한마디. "취업사이트 달달 외지 마세요. 인사팀도 취업사이트 자주 들어갑니다."

탐사기획팀

[탐사기획팀 '대기업 취업'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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