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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하노이 경제포럼] 한국·베트남 경제협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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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 중앙일보는 1월 경제포럼을 지난달 31일 베트남 하노이 힐튼호텔에서 15명이 참석한 가운데 "베트남의 경제발전과 한·베트남 경협"이란 제목으로 개최했다. 포럼은 한·베트남 양국의 관리 및 경제학자 5명이 주제발표를 한 뒤 토론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베트남이 도이 모이(개혁.개방) 정책을 내걸고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한 지 19년. 아시아에선 중국 다음으로 고속 성장하고 있는 베트남은 세계무역기구(WTO) 가입도 추진하고 있어 조만간 세계경제의 틀 속에 편입된다. 한국 기업들도 값싸고 질 좋은 노동력과 풍부한 자원, 인구 8000만명의 내수를 겨냥해 베트남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어 2002년 이후 대 베트남 투자 2위국으로 떠올랐다. 중앙일보는 지난달 31일 양국 역사상 처음으로 베트남의 수도인 하노이에서 '베트남 경제발전과 한.베트남 경제협력'을 주제로 경제포럼을 열었다. 기획투자부 외국투자청 판후탕 청장 등 4명의 베트남 관료.경제학자와 한국 측 좌승희 한국경제연구원장이 주제발표를 하고 10명이 토론에 참여했다.

편집자

▶사회(정운영)=베트남이 외세와 싸울 때 한국이 돕지 못하고 오히려 어렵게 한 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이제는 과거를 묻고 함께 전진해야 할 때입니다. 1986년 도이 모이 정책을 선언한 이후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논의하겠습니다.

▶이장규=91년 방문했을 당시 베트남 경제는 급속히 성장할 것으로 보였습니다. 물론 그동안 베트남은 많은 성장을 했습니다만, 생각했던 것보다는 변화의 속도가 느린 것 같습니다.

▶풍숭냐=도이 모이를 시작할 당시 우리는 가진 것이 워낙 적었습니다. 따라서 지난 20년간 이뤄낸 성과는 아주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기대 만큼 성장하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그동안 연평균 7~8% 성장했지만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했다면 연 10~12%는 성장했을 것입니다.

▶사회=이유는 무엇입니까.

▶판후탕=두 가지입니다. 97년 아시아의 외환위기를 우선 꼽을 수 있습니다. 그 전까지는 외국인 투자가 총 80억달러 이상 됐을 정도로 성장이 빨랐습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2000년까지 외국인 투자는 계속 뒷걸음질쳤습니다. 둘째는 수준 높은 인력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인구 8000만명 중 노동가능인구는 4500만명에 달하지만 높은 수준의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적습니다.

▶이제민=중국은 과도한 성장으로 부작용을 앓고 있습니다. 이 점을 고려해 일부러 성장률을 낮춘 것은 아닙니까.

▶크티뚜잇마이=그렇지는 않습니다. 두 자릿수 성장을 하는 중국을 보고 우리도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실제로는 매우 어려웠습니다. 여러 부정적인 요인들 때문에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서윤석=중국에 비해 외국인 투자 정책이 소극적이기 때문에 외자유치가 충분치 않은 것 같습니다. 과거 외세 침략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개방과 외자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판후탕=그렇지 않습니다. 중국에 비해 법제가 미비하고, 행정개혁 속도도 느리며 투자 수속도 복잡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중국보다 나은 점도 있습니다. 중국에 투자했던 기업들이 베트남으로 오는 사례가 많습니다. 인구 대비 투자환경으로는 중국보다 낫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박원암=호찌민 등 남부 베트남은 시장경제체제 경험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중국보다도 시장경제로의 전환이 쉬웠을 것 같은데요.

▶풍숭냐=75년 통일하기 전 남부 베트남은 시장경제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전쟁을 위한 임시 시장경제로 통일 베트남에 좋은 영향을 줄 것으로 생각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세계은행이나 중국 등에서 더 많이 배웠습니다.

▶신광식=어떤 외자를 선호합니까.내수시장을 겨냥한 외자는 제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판후탕=단계별로 외자의 방향을 조정해 왔습니다. 지금은 2020년 베트남을 현대적인 공업국으로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하이테크 투자를 선호합니다. 또 수출지향적인 외자를 희망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내수시장을 노린 외자를 제한하고 있진 않습니다.

▶서근우=한국 금융기관들은 베트남에 진출해 금융.산업 발전에 기여하길 원하고 있습니다.

▶윙납바우=한국은 신한은행 등 4개 은행이 지점과 합작은행을 베트남에 두고 있습니다. 앞으로 WTO에 가입해 금융 규제를 더 풀게 되면 한국은 베트남 기업.개인을 상대로 여신 영업을 할 여지가 많습니다. 다만 한국에 앞서 미국이 규제완화 혜택을 먼저 받게 될 것입니다.

▶사회=왜 그렇습니까.

▶윙납바우=미국과는 2001년에 무역협정을 체결했지만 한국과는 아직 쌍무협정을 맺지 않아서입니다.

▶신제윤= 베트남 경제 관료.학자들이 한국의 발전 과정을 배우기 위해 여러 차례 서울에 다녀갔습니다. 한국에서 참고로 하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풍숭냐=한국에서 공업화를 위한 교육 투자와 하이테크 산업의 육성, 대기업 위주의 산업정책을 펴면서 독점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를 배웠습니다. 그러나 한국이 산업화를 할 당시와 시대적 배경이 달라 요즘은 말레이시아의 공업화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박우규=한국이 60~70년대 그랬듯이 베트남도 수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수출 못지않게 도로.통신.전력 등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많이 했는데 베트남은 소홀한 것 같습니다.

▶사회=한국에서 배우지 말아야 할 점은 무엇입니까.

▶윙납바우=한국에 외환위기를 초래했던 과다한 외채는 본받고 싶지 않습니다. 또 국가가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 대기업과 이로 인한 정경유착은 피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중소기업을 육성하려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박원암=한국도 외채를 안고 싶어서, 중소기업을 키우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닙니다. 베트남도 외채를 안고 싶진 않겠지만 무역적자인 상태에서 인프라를 건설하려면 어쩔 수 없을 것입니다. 또 다국적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면서 중소기업을 걱정한다면 대체 어쩌자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듭니다.

▶최정표=기업과 금융기관의 민영화가 어느 정도 진척됐으며 향후 계획은 어떻습니까.

▶윙납바우=민영화는 적극 추진할 것입니다. 국영기업의 민영화는 진작부터 시작해 오고 있으며, 금융기관은 준비 중입니다. 올해 중 국영은행 가운데 하나를 민영화할 예정입니다.

▶이장규=한국도 언젠가 통일을 할 것입니다. 베트남은 30년 전 통일했는데, 시행착오는 없었습니까.

▶크띠뚜잇마이=통일 후 남쪽의 사유재산을 몰수하고 기업을 국유화한 것이 잘못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로 인해 나중에 다시 시장경제를 도입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정리= 신혜경.이영렬 기자

*** 한·베트남 학자 발표 요지

◆베트남의 경제발전 전략(크티뚜잇마이 하노이대 경제학과 교수)=베트남은 1986년 도이 모이 정책을 시작한 이후 큰 성과를 거뒀다. 시장경제체제로 전환됐으며,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두 배 이상 성장했다. 수출 위주의 경제정책과 적극적인 외자유치 정책도 큰 효과를 봤다. 지금은 2020년까지 현대적 공업국가 건설 비전을 시행 중이다.

◆베트남의 개방 전략(풍숭냐 하노이대 경제개발연구센터 소장)=베트남은 정치체제와 상관없이 모든 나라와 친구가 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76년 통일 후 세계은행 등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아태경제협력체(APEC), 아시아.유럽회의(ASEM)에도 가입했다. 내년 초 WTO에 가입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베트남의 외국인 투자 유치전략(판후 탕 기획투자부 외국투자청 청장)=베트남은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해 국내 자본과 똑같은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도록 투자환경을 지속적으로 개선해 오고 있다. 지난해 7월부터 외국인 고소득자에 대한 세금을 줄였으며, 연내로 일부 상품 .서비스에 대해 국내외 기업 간 이중가격 제도도 없애겠다.

◆베트남의 통화정책 (윙납바우 베트남 국가은행 통화정책국 부국장)=중앙은행(SBV)은 물가상승률 목표에 맞춰 통화정책을 펴고 있다. 지난해엔 조류독감과 국제 원자재 가격 인상 등의 외부 요인으로 물가상승률이 7.8%까지 올라갔지만 올해는 8.5% 성장에 6.5%의 물가상승률 목표를 달성하겠다. 상업은행의 주식회사화를 추진 중이며 최근 외국자본 100%의 은행도 허가했다.

◆동북아 경제발전에서 베트남이 얻어야할 교훈(좌승희 한국경제연구원 원장)=한국이 60~70년대 경제발전에 성공했던 것은 잘하는 기업과 개인을 우대하는 차별주의 정책 때문이었다. 중국이 오늘날 고속성장하는 것도 차별적 정책 때문이다. 베트남은 이런 교훈을 숙지해야 할 것이다. 잘하는 사람의 발목을 붙잡고, 못하는 사람을 지원한다면 경제발전이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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