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층 “브라보! 스마트폰 그레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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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이걸로 뉴욕 타임스·르몽드 읽고 ‘라디오 프랑스’도 듣고요. 해외에서도 전원만 껐다 켜면 자동 로밍되니 참 편리하죠.”

‘최고령 스마트폰 유저’ 최종 결선에서 네티즌들에 의해 ‘베스트’로 뽑힌 연극연출가 김정옥(78)씨가 아이폰으로 각종 정보를 검색하고 있다. [KT 제공]

20, 30대 젊은이의 말이 아니다. 팔순을 코앞에 둔 연극연출가 김정옥(78)씨다. 중앙대 교수 퇴임 후 경기도 광주에서 ‘얼굴’이라는 박물관을 설립 운영해 온 그는 최근 몇 달 만에 아이폰 매니어가 됐다. 온라인 방송부터 카메라에 비친 상점 정보를 자동 검색해 주는 ‘스캔서치’까지 애플리케이션(응용 프로그램, 이하 ‘앱’)을 다루는 솜씨가 능란하다. 그는 KT ‘쇼 블로그’가 뽑은 ‘베스트 최고령 스마트폰 유저’로 28일 선정됐다.

KT는 이 이벤트를 하기 위해 지난달 중순 회사 공식 트위터로 ‘주변의 아이폰 고령 사용자를 추천해 달라’는 공지를 띄웠다. 대부분 자신의 부모를 추천했지만 김 관장의 경우 그를 아는 한 대학교수의 추천을 받았다. KT는 자체 심사를 통해 다섯 명을 결선에 올렸다. 그중 네티즌들로부터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김 관장이 ‘베스트’로 선정됐다. 응모자 중 최고령인데도 스마트폰을 젊은 사람 못지않게 활용하는 그에게 네티즌은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84년생인 저보다 더 얼리어답터(신제품을 앞서 쓰는 사람)시네요’(@papaeyes), ‘새롭고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어르신이 저보다 훨씬 젊게 생각하십니다’(@cykim32) 등의 성원 글이 이어졌다. 1971년생이라는 한 네티즌은 ‘나이 좀 먹었다고 처져 있던 제가 반성이 됩니다’라고 털어놨다.

KT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김 관장은 “20대 젊은 날에 이런 게 나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때는 휴대전화는커녕 집전화도 드물던 시절”이라고 회상했다. 1950년대 프랑스 유학 시절엔 고국에서 오는 편지만 마냥 기다렸다고 한다. 그는 “친구들에게 (아이폰을) 보여주면 다들 부러워하면서도 새것에 대한 거부감과 귀찮다는 생각 때문에 시작들을 하지 못하는 듯하다”고 아쉬워했다. 아울러 “막상 써보면 편리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앱을 통해 세상과 보다 친밀하게 소통할 수 있다”며 노년층이라도 용기를 내 스마트폰에 도전해 보길 권했다. 그는 ‘베스트 유저’로 선정된 지금 아이폰을 들고 독일 등 유럽 3개국을 한 달간 혼자 여행하고 있다.

개인사업가 유재중(71)씨도 최종 결선에 올랐다. 그는 아들이 선물한 아이폰을 비즈니스에 적극 활용한다고 했다. e-메일은 물론 제품 도면까지 아이폰으로 주고받는다. 아이폰으로 음악을 연주하는 ‘핑거 피아노’, 얼굴 인식 프로그램인 ‘푸딩’ 등 엔터테인먼트용 앱도 쓴다. 그는 “작은 글씨를 키우기 위해 손가락으로 화면을 자꾸 움직여야 하는 게 좀 귀찮다. 화면이 큰 아이패드 출시를 진작부터 고대해 왔다”고 말했다.

윤원진(65)·차완순(62)씨 부부는 해외 여행 때 아이폰 덕을 많이 본다고 했다. 지금껏 30개국 이상을 돌아봤는데 아이폰이 생긴 뒤로는 짐이 한결 단출해졌다는 것이다. 윤씨는 “스마트폰 한 대가 전화·카메라·지도·사전 역할을 다 하기 때문이다. 올봄 일본 여행 때는 일한사전 앱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자동차 여행을 자주 해 주유소 안내 앱도 애용한다.

서울예술대학의 정중헌(64) 부총장도 결선에 올랐다. 학교가 교직원 복지 차원에서 올 초 아이폰을 지급했는데 궁합이 딱 맞았다. 그는 “처음엔 모르는 기능이 너무 많아 겁부터 났다. 하지만 (아이폰에 관한) 책을 한 권 사 읽고 문자 입력에 자신이 붙으면서 두려움이 사라졌다”고 했다. 정 부총장은 출퇴근 때마다 아이폰으로 음악과 영화를 즐긴다. 지하철 환승역을 안내하는 앱도 즐겨 쓴다. 그는 “아이폰을 열심히 쓰니까 우리 딸이 멋진 케이스도 사주더라”며 즐거워했다.

이나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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