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미국 극작가 아서 밀러 타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 1956년 영국 런던에서 초연된 '다리에서의 조망' 을 보러온 아서 밀러와 부인 마릴린 먼로.[AFP=연합]

'세일즈맨의 죽음'을 쓴 미국의 극작가이자 여배우 마릴린 먼로의 세번째 남편이었던 아서 밀러가 지난 10일(현지시간) 미 코네티컷주 록스버리 자택에서 지병으로 숨졌다. 89세.

1915년 뉴욕의 유대계 중류 가정에서 3남매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난 밀러는 소년 시절 대공황으로 집안이 몰락하자 접시닦기.사환.운전사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고학으로 미시간대 연극과를 졸업했다. 재학 중 쓴 몇 편의 희곡과 전쟁(제2차 세계대전)에 비판적인 심리극 '모두가 나의 아들'로 관심을 모은 그는 49년 대표작 '세일즈맨의 죽음'을 발표하며 일약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인생에서 낙오해 비극적 최후를 맞는 영업사원 윌리 로먼을 통해 물질 만능주의.성공 이데올로기를 비판한 '세일즈맨의 죽음'은 그에게 퓰리처상과 토니상, 뉴욕연극비평가단체상 등을 안겼다. 이 작품은 전세계의 극작 교재로 활용됐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차례 연극 무대에 올려졌었다.

50년대 미국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반(反)공산주의 선풍인 매카시즘을 17세기 뉴잉글랜드에서 있었던 마녀 재판에 빗대 비판한 '도가니'도 대표작으로 꼽힌다. 67~68년 시즌 브로드웨이에 올려졌던 '프라이스'가 세인들의 관심을 끌었던 마지막 작품이었다. 생애 통틀어 모두 17편의 희곡을 남겼다.

밀러는 공산주의자 혐의를 받고 미 의회 증언대에 서는 등의 고초를 겪은 직후 먼로와 결혼을 결정했다. 그들이 어떻게 결혼하게 됐는지 등을 놓고는 아직까지 추측이 무성하다.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56년부터 61년까지 이어졌으나 먼로의 약물 및 알코올 중독, 배우 이브 몽탕과의 염문등이 공개되면서 끝내 파경을 맞았다. 밀러는 92년 한 프랑스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먼로를 '극도로 자기파괴적인 사람'으로 묘사 했다.

유진 오닐, 테네시 윌리엄스 등과 함께 20세기 미국의 가장 위대한 극작가로 꼽히는 그의 죽음에 대해 영국 출신의 극작가 해롤드 핀터는 "그는 연극계의 지도자였고 이정표 같은 인물이었다"고 애도했다.

신준봉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