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본격 교류 뱃길 연 카페리 스무 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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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25일 오전 11시 인천항 제2국제여객터미널. 전날 중국 칭다오항을 출항한 뉴골든브리지5호가 14시간의 항해 끝에 도착했다. 359명의 승객 가운데 중국인 승선객 203명은 모두 단체관광객이다. 156명의 한국인 승객 중 50여 명도 여행사를 통해 중국으로 단체관광을 다녀오는 이들이었다.

태산·곡부 등을 다녀온 김모(58·여)씨는 “친구들끼리 밤새 카페리를 타고 다녀온 여행의 재미가 각별했다”고 말했다. 이 배는 오후 5시 ‘보따리상’이라고 불리는 소무역상 200여 명을 포함한 350명의 승객을 싣고 칭다오로 떠났다.

1990년 9월 15일 오후 5시. 130여 명의 승객을 태운 카페리선(사진)이 인천항 갑문을 통과해 중국 산둥성의 웨이하이(威海)로 처녀 항해를 떠난 지 20년이 흘렀다. 양국이 수교하기 전 ‘중공’으로 불리던 시절이었다.

산둥반도와 한강 하구 간에는 삼국시대 때부터 해상무역이 활발했다. 새벽이면 산둥반도의 닭 우는 소리가 들린다고 할 정도로 가까운 뱃길이다. 끊긴 뱃길이 40여 년 만에 다시 열리자 승객수요가 폭발했다. 1992년에 인천∼톈진 항로가 개설되는 등 항로가 늘어났다. 현재 인천항에서만 단둥(丹東)·옌타이(煙臺)·다롄(大連)·스다오(石島)·잉커우(營口)·칭다오(靑島)·롄윈강(連雲港)·친황다오(秦皇島) 등 10개 항로가 열려 있다. 평택·군산에서도 중국을 오가는 카페리 항로가 4개 개설됐다. 항로마다 주 3∼4회씩 운항하면서 20년간 한·중 카페리선이 실어 나른 승객은 1100만 명에 이른다. 두 나라를 오간 화물 컨테이너는 330만 개다. 한준규 황해객화선사협회 회장은 “카페리가 양국 간의 인적·물적 왕래의 물꼬를 텄다”고 말했다.

가장 먼저 한·중 카페리가 취항한 웨이하이는 상전벽해의 변화를 보였다. 인구 20만 명의 어촌이 300만 명의 공업도시로 탈바꿈했다. 한국 기업 1300여 개를 포함, 외국투자 기업만 2000여 개에 이른다. 웨이하이 외에도 한·중 카페리가 취항하는 도시마다 부두를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돼 특수를 누리고 있다. 여기에는 중국어로 다이궁(帶工)이라 불리는 보따리상의 활약도 컸다. 스스로를 ‘선숙자(船宿者)’로 부르는 이들은 외환위기 때는 승객의 70∼80%를 차지할 정도로 활동이 왕성했으나 최근 세관검색이 강화되면서 50% 이하로 떨어졌다. 대신 최근에는 백두산이나 중국 동북지방으로 가는 수학여행·단체여행객이 크게 늘어 한·중 카페리의 앞날을 밝게 하고 있다.

한·중 카페리 업계는 언젠가는 승용차와 관광객을 함께 싣고 서해를 달리는 꿈을 안고 있다. 김성수 위동해운 사장은 “승용차만 승선하면 배를 타고 서해를 건넌 뒤 중국 대륙과 실크로드를 달리며 세계 여행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정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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