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철호의 시시각각

희토류가 뭐기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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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중국의 희토류 압박에 지나치게 겁먹을 필요는 없다. 중국이 세계 매장량의 30%, 국제 시장의 98%를 휘젓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매장량이 엇비슷한 미국과 호주가 왜 손을 놓는지 짚어봐야 한다. 희토류는 함유량이 워낙 적은 데다 방사능 물질이 섞여 있기 일쑤다. 화학적·물리적 성질이 비슷해 분리도 까다롭다. 선진국에서 희토류 광산과 정련공장이 환경오염 때문에 기피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세계 2, 3위의 미국과 호주 광산은 오래전 문을 닫았다.

상대적으로 환경오염에 느슨한 중국만 희토류에 열을 올렸다. 세계 1위의 바얀오보 광산 등 많은 업체가 무분별한 채굴로 과당경쟁을 벌였다. 지난해까지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면서 국제 시세도 바닥이었다. 선진국 광산부터 모조리 나가떨어졌다. 출혈수출은 중국이 세계 희토류 시장을 독차지한 비결이다. 글로벌 독점을 위해 중국은 온갖 술수를 부렸다. 국내 희토류 기업들을 구조조정하고 외국인 투자는 금지시켰다. 5년 전에는 미국, 지난해는 호주 광산까지 몰래 삼키려다 미수에 그쳤다. 중국의 야심을 눈치챈 상대편 정부가 ‘자원 안보’를 내세워 좌절시킨 것이다.

중국의 희토류 방망이는 앞으로도 괴력을 뽐낼까? 당분간 재미를 보겠지만, 길게 보면 ‘글쎄’다. 우선 희토류 매장량이 비교적 풍부한 편이다. 품목에 따라 87~1023년간 채굴할 수 있는 수준이다. 중국의 자원무기화에 따른 역풍(逆風)도 계산에 넣어야 한다. 많은 나라가 희토류를 전략물자에 포함시키기 시작했다. 중국에 맞서 미국은 ‘마운틴 패스’ 폐광(廢鑛)을 재가동하는 반격에 나섰다. 희토류의 채산성이 살아나면서 호주와 남아공의 폐광에도 햇살이 비치고 있다. 지난해 그린란드에선 세계 2위의 초대형 희토류 광맥이 발견됐다.

궁하면 통하게 마련이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다. 일본은 결코 만만한 나라가 아니다. 최근 아이치제강과 히타치는 영구자석에 희토류 대신 들어갈 신물질을 개발해냈다. 2~3년 안에 양산이 가능하다. 이들 업체는 “훨씬 싸고 성능도 더 낫다”고 장담한다. 일본이 힘을 쏟는 또 하나의 대안은 재활용이다. 이른바 ‘도시 광산’이다. 일본은 희토류를 50% 이상 회수하는 세계적 수준을 자랑한다. 한국에서 헐값에 수입한 전자 폐기물에서 희귀금속을 뽑아낸 뒤 비싼 값에 역수출하고 있다.

중국의 굴기가 호들갑스럽다. 사방에서 마찰을 빚고 있다. 유럽에서 독일이 일어설 때도 그랬다. 영국에 맞서 두 차례 세계대전을 벌였다. 20세기 후반 일본의 부상(浮上) 때도 마찬가지였다. 미국과 유럽은 연합전선을 폈다. 일본은 프라자 합의 이후 ‘잃어버린 10년’을 맞았다. 중국이라고 다를까. 미국은 이미 위안화 환율을 집요하게 공격하고 있다. 좌절을 맛본 일본의 감정이 좋을 리 없다. 천안함 이후 한국도 중국을 보는 시선이 차가워졌다.

중국이 스스로의 힘을 주체하지 못하면 큰일이다. 일본이 굴복하자 환호하는 중국. 그런 모습이 전 세계에 어떻게 비칠지 궁금하다. 중국은 희토류 압박이 회심의 카드라고 여길지 모른다. 그러나 잘못된 선택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 후유증은 분명히 오래갈 것이다. 오히려 미래를 도모하면서 선뜻 물러선 일본의 ‘스미마셍(すみません·미안합니다) 외교’가 훨씬 돋보인다. 중국이 너무 섣불리 고개를 드는 게 아닌가 싶다. 어떤 운동에도 헤드 업(head up)은 금물이라는데….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