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mily] 엄마 아빠 "해방" 콘서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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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 1. 함께 공연장 도착

▶ 2. 아이는 맡기고

▶ 3. 공연 즐겨요

"결혼 전에는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를 더러 보러다녔는데요, 결혼해 아이를 낳고부터는 공연장 찾을 엄두를 내지 못하겠더라고요. 공연장에 갔다 오는데 걸리는 이동 시간까지 네다섯 시간 동안 아이들을 누가 봐줍니까. 시어머니께 맡기기는 죄송스럽고…."

이 땅의 주부들의 문화생활은 아이가 생기면서부터 갑자기 뚝 끊겨 버린다. 1999년 결혼한 박수진(30)씨의 경우도 그렇다. 박씨에게는 올해 다섯 살이 된 아들(김성현)과 두 살짜리 딸(은혜)이 있다. 괜찮다고는 하시지만 칠순인 시어머니께 둘을 한꺼번에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것도 공연장 간다는 이유로는.

하지만 박씨는 지난 11일 6년 만에 서울 동숭동 대학로 공연장을 찾을 수 있었다. 남편은 물론 아이들과 함께였다. 인기 발라드 그룹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중앙일보 프리미엄팀과 손잡고 이날 콘서트에 한해 공연 시간 동안 아이들을 맡아주는 놀이방을 운영했기 때문이다.

추첨을 통해 회원들에게 공연 티켓 등을 제공해온 프리미엄팀은 주부들이 공짜표가 생겨도 아이들 때문에 관람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 착안, 행사를 기획했다.

공연장 건물 3층의 노래방 2개 실을 노래도 부르고 게임도 할 수 있는 놀이방으로 꾸민 것. 지난달 중순부터 온.오프라인을 통해 관람 신청을 받은 결과 2300여명이 응모했고, 그중 50명을 초청했다.

덕분에 20대들만의 공간으로 여겨졌던 대학로 콘서트 무대 '질러홀'에는 이날 30,40대 부부들이 유난히 많았다. 끝내 떨어지지 않으려는 아이와 함께 자리한 주부들도 눈에 띄었다.

부부가 모처럼 아이들로부터 해방돼 서정적인 발라드에 젖어들거나 흥겨운 록 음악에 몸을 맡기는 2시간여 동안 아이들은 엄마를 잊고 새 친구들과 노래 부르고 게임하는 재미에 빠졌다.

이날 행사는 명절 차례 준비로 지친 주부들의 심신을 달래주는 데도 특효를 발휘했다.

송은정(36)씨는 연휴 2~3일 전부터 짜증이 나는 등 '명절증후군'에 걸린 경우. 설을 쇠러 부산까지 내려가는 일도 만만치 않지만 차례상과 열다섯 식구 식사 준비를 꼬박 이틀간 도맡다시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송씨는 이날 콘서트를 통해 명절의 후유증을 말끔히 씻어냈다. 프리미엄 사이트 게시판엔 "초등학교 1학년생인 아이를 맡겨도 된다고 해 너무너무 기뻤습니다. 오랜만에 남편과 함께 추억에 젖었고 명절 때 받은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려버렸습니다"라는 글도 남겼다.

최근 지자체들이 세우는 공연장은 주부들의 강렬한 문화욕구를 감안, 대부분 탁아시설을 갖추는 추세다. 2003년 문을 연 대전문화예술의전당, 지난해 개관한 경기도 고양시의 복합문화공간 '덕양어울림누리' 등이 번듯한 어린이 놀이방을 마련했다. 3월 개관하는 서울 중구청의 충무아트홀에도 놀이방이 생긴다.

하지만 다양한 문화 콘텐트를 공급하는 대학로의 소극장들은 이런 추세를 따르지 못하고 있다. 비용과 공간, 안전문제 등으로 탁아시설 마련은 꿈도 꾸지 못한다는 것. 대학로의 공연기획사 모아엔터테인먼트의 김지영 실장은 "시나 구, 문예진흥원 같은 공공기관에서 공연 관람을 원하는 주부 관객을 위해 탁아시설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신준봉 기자<inform@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 탁아시설 있는 공연장

대형 공연장들은 대부분 탁아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예술의전당의 '어린이 나라(02-580-1159)'는 종이접기 놀이, 인형극, 동화 구연, 마술 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자랑이다. 세종문화회관은 놀이방 '아이들세상(02-399-1593)' 운영을 탁아 전문업체(아이들세상)에 위탁했다. 공연 시작 30분 전부터 공연 후 30분까지 맡아준다. 문예진흥원 예술극장은 3세에서 6세까지 맡아주는 어린이 놀이방과 별도로 어머니가 3세 미만 영유아와 함께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모자방 '보금자리(02-760-4648)'를 운영 중이다. 국립극장.정동극장.국립국악원과 서울열린극장 창동 등도 놀이방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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