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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희토류 레버리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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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그리스를 호시탐탐 노리던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는 스파르타에 사자를 보낸다. 그가 요구한 건 ‘한 줌의 흙’이다. 국가의 토대이자 부(富)의 원천인 땅을 상징한 것으로, 우회적인 복속(服屬) 권유다.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 왕은 이를 거부하고 테르모필레로 나선다. 정예 300명만 거느리고. ‘식스팩’ 신드롬을 일으킨 프랭크 밀러 원작의 영화 ‘300’에서는 “겨우 한 줌의 흙 때문에…”라고 하지만, 현대에서라면 망발이다. 세계는 지금 한 줌의 흙을 두고 ‘연기가 없는 전쟁’ 중인 것이다.

그중에서도 ‘매우 드문 흙’이 문제다. 바로 희토류(稀土類)다. 18세기 북유럽에서 처음 발견됐다. 원소 이름에 테르븀·에르븀·이테르븀 등 스웨덴 지명이 많은 이유다. 희토류는 란타늄 계열에 스칸듐과 이트륨을 합친 17개 원소의 총칭인데, 란타늄은 “나는 숨어 있다”는 뜻이다. 같은 계열의 디스프로슘은 “얻기 힘들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 물질이 반도체와 전기자동차 등 첨단산업의 핵심 원료다. 첨단산업의 비타민, 녹색산업의 필수품으로 불리는 배경이다.

일본의 친환경·최첨단의 대표주자가 하이브리드카 프리우스다. 여기엔 0.9~1.8㎏의 네오디뮴이 들어간다. 새로운 쌍둥이란 뜻의 희토류다. 이런 희토류 매장량의 70%가 중국에 몰려 있다. 전 세계 생산량의 97%를 점한다. 2000년대 중반 ‘흙값’이었던 것이 중국 정부가 통제하면서 ‘금값’이 됐다. 레이저·형광체 원료 테르븀은 1㎏에 300달러를 웃돈다. 헐값 희토류를 기반으로 구축한 첨단산업을 ‘금단증상’으로 위협하는 형국이다. 중독의 폐해를 처절하게 겪은 ‘아편전쟁’의 역(逆)버전인가.

이를 내다보기라도 한 듯 덩샤오핑은 1992년 “중동에 석유가 있다면, 중국엔 희토류가 있다”고 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며 ‘흑묘백묘론(黑猫白描論)’을 강조한 남순강화(南巡講話)에서다. 마치 흑묘는 검은 원유를, 백묘는 회색 희토류를 상징하는 것 같다.

이런 희토류가 중·일 간 외교 분쟁을 해결하는 레버리지로 작용했다. 일본명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에서 조업하던 중국 선장을 사법 처리하려던 일본이 중국의 수출 중단 위협에 백기를 든 것이다. ‘한 줌의 흙’이 자원무기로서 위력을 발휘한 셈이다. 바다 건너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한국광물자원공사의 희토류 비축량은 8월 말 기준 3t으로 목표량의 0.3%란다. 볼리비아의 리튬 확보에 들떠 샴페인만 터뜨릴 때가 아니다.

박종권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