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M·전력기기로 쌓은 기술 ATM 닮은 전기충전기 낳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5면

이르면 10여 년 뒤 아파트나 대형 건물 주차장, 대형마트 등지에서 보게 될 ‘셀프전기충전소’의 모습이다. 정부는 2020년 전기차 100만 대 보급이라는 목표를 세워놨다.

현대자동차는 지난 14일 경기도 화성시 남양연구소에서 고속 전기자동차 ‘블루온’ 시승 행사를 했다. 국내 첫 양산 전기차라는 점과 함께 전기차의 필수 동력장치인 충전기 역시 높은 관심을 모았다. 이날 효성은 급속 전기충전기 ‘젠토피아(가칭)’를 선보였다. 이 회사 최태식 스마트그리드팀장은 “전기 20㎾h를 충전(25분 소요)하면 150여㎞를 달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기자동차 충전기는 교류(AC) 전기를 자동차에서 쓰는 직류(DC)로 변환·충전해 주는 기계장치다. 충전 속도에 따라 급속·완속으로 구분된다. 급속충전기로 20㎾h를 충전하려면 25분가량, 완만한 속도로 같은 양을 충전하려면 6시간쯤 걸린다. 급속은 아파트·대형건물 주차장 등에서 상업용으로, 완속은 가정용으로 보급될 전망이다.

효성이 개발한 고속 전기충전기. 은행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금입출금기(ATM)기술을 활용해 사용자 편의성을 높였다.

그런데 조금 자세히 살펴보면 전기충전기는 은행 현금입출금기(ATM)를 닮았다. 최태식 팀장은 “실제로 ATM 기술을 빌려왔다. 효성의 젠토피아는 ATM과 전력기기를 융합한 것”이라고 전했다. 올 초 본격적으로 이 사업을 시작한 효성이 8개월 만에 제품 개발에 성공한 건 이런 배경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경쟁사 대비 6개월~1년가량 빠르다고 한다.

효성은 1990년대 초반 ATM 사업에 뛰어들어 지난해 매출 3300억원으로 국내 1위다. 또한 세계 4위 업체로 미국·유럽·중국·호주 등지에 연간 1500억원어치를 수출한다. 이 회사는 또 70년대부터 전력기기를 생산하면서 관련 기술을 축적해 왔다. 현대자동차의 최명선 책임연구원은 젠토피아에 대해 “ATM에서 쌓은 노하우와 전력 변환기술이 만난 기술 융·복합의 성공 사례”라고 평했다. 효성 젠토피아는 제주도 스마트그리드(지능형 전력망) 단지에서 시범 운영 중이다. 최 팀장은 “전기차 보급이 늘어나려면 전기충전기 같은 인프라도 확충돼야 하는데 이것이 전기차 상용화의 숙제”라고 말했다.

이상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