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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에게만 육아 부담 떠넘기는 한국 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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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지난 2월 로레알코리아 사장으로 부임한 지 이제 반년이 지났다. 역동적인 나라 한국에 와서 보낸 지난 시간은 새로운 경험과 흥분의 연속이었다. 가장 놀라웠던 점은 한국 여성들이 지닌 열정과 역량이었다. 30여 년간 로레알에 몸담으며 프랑스를 비롯해 영국, 독일, 브라질, 미국 등지에서 다양한 소비자들을 접해왔다. 하지만 한국 여성들의 제품에 대한 관심과 이해의 폭은 다른 나라들을 완전히 다른 수준으로 앞서 있다.

최근 듣게 된 한국 여성과 관련된 통계수치는 필자를 다시 한번 놀라게 했다. 한국의 대졸 여성들의 취업률이 60.7%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이며, 남녀 간 임금격차가 OECD 국가 중 최대라는 것이다. 배경이 궁금해 주변에 물어보니, 한국에서는 여성이 육아의 대부분을 책임지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낮은 취업률과 큰 임금격차 모두 여성에게 쏠린 과중한 육아(育兒) 부담의 결과라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우수한 한국의 여성 인력들이 성공적인 직장경력과 아이를 기르는 행복을 함께 누리지 못하고 양자택일해야만 하는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같은 문제를 앞서 고민했던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의 경우를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유럽 국가들은 정규직 파트타임제와 재택근무 등 보다 유연한 근무제도의 도입과 활용을 통해 여성들에게 직장생활과 육아의 두 가지 과제를 조화롭게 병행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효과를 보고 있다. 로레알그룹 본사의 경우 다수의 워킹맘들이 초등학교가 휴교하는 수요일에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주4일제 근무를 선택하고 있다. 이외에도 여성 직원들이 가정생활과 일을 양립할 수 있도록 많은 지원책을 운영하고 있다.

물론 한국의 사회문화적 환경은 유럽국가들과는 상당히 다르다. 이 때문에 이 같은 유연근무제가 실제로 도입돼 여성들의 육아 부담을 덜어줄 수 있기까지는 긴 시간의 사회적 합의와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당장의 현실에서는 취업과 출산, 육아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여성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자신감을 북돋워 주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절실해 보인다. 로레알코리아는 최근 여성가족부와 2011년부터 향후 5년간 출산과 육아를 위해 직장을 떠났던 여성들의 재취업 지원프로그램을 후원하기로 했다. 여성 재취업이 활성화될 경우, 육아와 업무의 병행이 어려운 현실에서 출산의 기회비용을 크게 낮춰줌으로써 여성 인력의 사회 진출 확대는 물론 출산율도 제고하는 좋은 방안이 될 것이다.

정부, 기업, 사회 전반에서 여성 인력의 육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중장기적 제도적 노력이 본격화되고, 여성 재취업 활성화에도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쏟아져야 한다.

리차드 생베르 로레알코리아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