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은 풍성한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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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호 11면

가벼움에서 무거움으로 그리고 다시 가벼움으로-.
살아가는 것도, 계절의 흐름도 그런 것 같습니다. 봄에 시작한 가벼움이 가을의 무거움을 지나 겨울로 가고, 여린 초승달이 꽉 찬 보름달로 가는 것이 그렇습니다. 꽉 찬 보름달 중에는 추석 보름달이 세상을 가장 즐겁게 합니다. 땅에 뿌리를 박고 있는 세상의 많은 것들은 이즈음에 열매를 가장 무겁게 하고는 ‘뉴턴’이 발견한 만유인력을 쫓습니다. 그것을 받아먹는 사람들 또한 꽉 찬 기쁨을 누립니다. 해서 추석 보름달이 가장 무겁습니다.

[PHOTO ESSAY]이창수의 지리산에 사는 즐거움

비록 추석 차례상에 오르진 못했어도 들판의 나락이 달빛만큼 누렇게 익었습니다. 여름날 시도 때도 없이 내린 비에 고생은 많았어도 큰 피해 없는 일 년 농사입니다. 가을볕에 나날이 익어가는 나락들이 속을 알차게 채우며 무게를 더하고 있습니다. 틈만 나면 논둑길에 발자국을 남긴 농부의 마음과 하늘이 함께 공들인 결실입니다. 고마운 날들입니다.

그렇다고 시름이 꼭 없지는 않습니다. 해마다 가벼워지는 ‘나락 값’이 올해는 조금이라도 무거워지면 좋겠습니다. 밥 많이 드세요.


이창수씨는 16년간 ‘샘이깊은물’ ‘월간중앙’등에서 사진기자로 일했다. 2000년부터 경남 하동군 악양골에서 녹차와 매실과 감 농사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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