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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꿈나무] '자연의 선택, 지나 사피엔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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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자연의 선택, 지나 사피엔스

원제 Sex, Time & Power

레너드 쉴레인 지음, 강수아 옮김

들녘, 608쪽, 2만1000원

▶ 앙리 루소 작 "뱀을 부리는 여인". 1907년. 파리 오르셰 미술관 소장.

여성이 남성보다 지적 능력이 뛰어나며, 인류의 진화는 여성의 자각에서 시작됐음을 과학적으로 보여주는 '여성에 대한 생물학적 찬사'로 읽히는 책이다.

인류는 다른 포유류 동물과 여러 면에서 다르다. 문명을 만들었다는 점에서만 차이를 보이는 게 아니다. 섹스 행태도 아주 독특하다. 임산.출산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발정기가 아닌데도 섹스를 하는 거의 유일한 동물이다. 저자는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인류 여성이 생물의 본능을 자기 의지로 눌러 배란기에도 짝짓기 욕구를 참는 유일한 포유류라는 점에 주목한다. 사실 인류 여성은 배란기를 냄새와 행동으로 수컷에게 전혀 알리지 않는 드문 생물이다.

저자는 인류 여성이 배란기에 성교를 거부하게 된 것을 생존을 위한 자연적 선택으로 본다. 우선 인류는 두발로 걷는 바람에 골반이 좁아졌다. 골반이 넓으면 내장이 아래로 쏟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그 골반을 통해 태어나야 하는 태아의 머리는 어느 포유류의 것보다 상대적으로 크다. 현생 인류의 뇌 용량은 유인원의 세 배를 넘는다.

문제는 이 때문에 출산시 태아가 산도에 막히거나 산모가 과다출혈을 일으켜 산모와 태아 모두가 사망할 확률이 어느 생물보다 높다는 사실이다. 고통과 죽음의 가능성을 수반하는 임신과 출산은 인류 여성에게 엄청난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인류 여성은 성교를 본능적으로 어느 정도 회피하게 됐으며 여기에 맞춰 생물학적인 진화도 이뤄졌다는 것이 저자의 독특한 주장이다. 즉 모든 동물이 갖고 있는 충동적인 행동에서 최초로 벗어난 것은 인류 여성이라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인 '지나 사피엔스(Gyna Sapiens)', 즉 '현명한 여자'라는 말은 이런 인류 여성에게 저자가 붙인 찬사다. 고대 그리스어를 이용해 만든 말이다. 현생 인류를 일컫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는 '현명한 인간'이라는 뜻과 함께 '현명한 남자'라는 의미도 있다. 하지만 실제 똑똑한 것은 남자가 아닌 여자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에 따르면 인류 여성은 이에 따라 배란기에 맞춘 성교라는 원인과 그 9개월 뒤에 있을 출산이라는 결과를 파악하는 지적 능력을 확보하게 된다. 나아가 달의 변화 주기와 배란기 주기, 즉 월경 주기가 같다는 것을 활용해 시간과 미래라는 개념을 모든 동물 가운데 최초로 자각한다.

여기에서 인류의 지성과 통찰력이 생기게 됐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를 통해 자연과 다른 생물의 미래 행동을 예측할 수 있게 된 인류는 지구에서 가장 유능한 포식자가 되고 자연을 지배하게 됐다는 주장이다. 게다가 인류 남성은 성교를 거부하는 여성을 설득하기 위해 언어를 발전시켰다는 가설도 제시한다. 요컨대 여성 섹슈얼리티의 변화가 인간 진화의 기본이라는 것이다. 같은 이론의 틀을 적용해 월경과 오르가슴, 남성의 공격적 성향, 동성애, 결혼 등의 의미도 나름대로 풀이하면서 인간 섹슈얼리티와 진화의 기존 관념에 대해 신선한 도발을 시도한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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