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토크] '최면을 걸고 명품을 산다고?'

중앙일보

입력

6개월짜리 송아지 가죽 지갑이니 두 살 된 악어 가죽 핸드백이니, 도전적인 밀리터리룩 패션 등 유혹의 문구를 동원하는 명품들. 품목은 다양하지만 공통점은 있다. 값이 비싸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서 비싼 물건을 응징하는 합법적인 방법이 하나 있다. 안 사는 것이다. 사겠다는 사람이 줄어들면 값은 내려갈 것이다. 손님이 더욱 줄어들면 밑지고 파는 일도 생겨날 수 있다. 경제학 교과서 앞부분에 나오는 수요의 가격탄력성(price elasticity of demand)에 관한 것이다. 가격의 변화에 수요가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측정하는 수치다. 가격의 변화에 손님이 바로 바로 반응하면 가격탄력성이 높다고 한다. 명품에 이런 법칙을 적용할 수 있을까. 물론이다. 브랜드 제품을 세일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몰려든다. 가격 변화에 민감하게 움직이는 것이다. 그런데 세일은 한시적이다. 보통 때 그들은 값이 너무 비싸다는 일반 소비자들의 불평을 들은 척도 안 한다. 다중을 상대로 장사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모시는 소수의 단골만 오케이하면 그만이다.

경제력이 뒷받침 되는 특정층을 대상으로 장사를 한다지만 명품 코너는 대체로 손님들로 붐빈다. 매장 직원들은 누가 물건을 살 사람이고 아닌 사람인지 척 보면 안다고 한다. 외양과 차림새, 그리고 몇 마디 대화를 나눠보면 판정이 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손님은 눈으로만 즐기는 아이쇼핑객이다. 좋게 말하면 잠재 고객 또는 장래의 고객이다. 지금 당장은 돈이 없어 만지작거리기만 하지만 언젠가 꼭 하나 장만하리라 다짐한다. 개중에 어떤 이는 지름신이 강림하사 바로 카드를 꺼내든다. 여기서 명품회사들은 신용카드 회사에 큰절이라도 해야 한다. 카드가 없던 시절엔 기대하기 어려웠던 구매가 이젠 아주 쉽게 일어난다. 물론 10개월 또는 1년 할부다. 가맹점 매출이 늘어나니 카드회사의 수수료도 불어난다. 카드회사는 할부이자까지 챙기니 일석이조다. 명품회사와 카드회사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사이다. 둘 다 재미를 보는 구조에서 허리가 휘는 쪽이 누군지는 뻔하다. 좀 더 계획적인 소비자는 곗돈을 붓거나 적금에 들기도 한다. 기존의 단골 고객이 있고, 현장에서 질러대는 충동형 손님이 있고, 장래의 착한 소비자까지 예비되어 있다. 이런 환경에서 가격탄력성을 높이기 위해 값을 내릴 명품회사들은 없을 것이다.

여느 분야와 마찬가지로 명품업체들도 디자인을 바꾸고, 색깔을 달리 입히는 식으로 끊임없이 신상품을 낸다. 모양은 많이 달라졌지만 가격을 조금 밖에 안 올린 신상이 나오면 먼저 사겠다며 난리가 벌어진다. 어쩌다 벌이는 세일이면 백화점 앞 도로는 마비된다. 어차피 메이커가 맘대로 정한 가격에서 며칠 20~30% 할인한다고 선전하면 다들 환장하는 것이다. 마케팅 전략으론 아주 좋다. 고객 사은 세일이라고 하지만 이때 재고상품도 털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다들 명품 값이 비싸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라는 방증도 된다. 비싸다고 생각하면 손님이 없어야 하는데, 늘 그 반대현상이 벌어지니 말이다.

명품이나 유명 브랜드를 우습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그걸 소유함으로써 얻는 것이 과시욕이나 허영심 외에 뭐가 있느냐고 싸늘하게 뱉는다. 틀리지 않은 말이다. 명품을 걸친 사람들은 무언으로 말한다. '나는 당신들과는 부류가 다른 사람이에요." 그걸 몰라주면 섭섭한 노릇이다. 다름을 인정받기 위해 그 비싼 돈을 들였으니까. 이 때 다름의 출발점은 경제력이다. 애당초 명품은 있는 사람들을 겨냥해 만든 물건이다. 품위와 멋을 담보하는 제품을 만드는 대신 값은 확실하게 받는다는 전략이다. 유명 디자이너가 만든 몇 억짜리 드레스를 상류층 여성이나 할리우드 배우가 아니면 누가 입을 것인가.

요즘은 명품 구매욕을 보다 고상하게 표현한다. 장구한 세월 그 브랜드를 타고 흐르는 정신을 존중하고 흠모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줄이면 자존심이다. 제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를 산다, 또는 브랜드에 담긴 자부심을 산다는 것이다. 한 브랜드가 100년 넘도록 살아남으려면 온갖 풍상을 겪게 마련이다. 그 어려움을 다 견뎌내려면 '내가 최고'라는 자존심이 바탕에 깔려 있지 않으면 안 된다.그래서 명품을 파는 것은 브랜드가 내포하고 있는 정신을 파는 것이라는 말이다. 포장술도 대단하다. 제품이 아니라 자존심을 파는 것이라니…. 자존심으로 뭉쳐진 이 제품을 사면 당신의 자존심도 높아진다는 심리전이다. 명품을 기웃거리는 소비자라면 이런 마케팅 전략을 고도의 상술이라며 무시할 힘이 없다. 그래서 스스로 최면을 건다. 이 브랜드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그 무엇이 담겨 있다고.

그렇다면 누가 그들이 만든 자존심을 사려고 애쓰는가? 자존심이 허한 사람인가. 아닐 수도 있지만 그럴 가능성이 더 크다. 깡이든 오기든 자부심이든 속이 꽉 찬 사람은 이런 브랜드에 허용할 내적 공간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마음이 허한 사람들이 명품을 산다고? 이런 모욕이 어디 있단 말인가. 말을 좀 고쳐야 할 것 같다. 조금 모자라는 자신감을 경제력으로 마저 꽉 채우는 것이라고…. 1300만원이 넘는 이탈리아제 키톤(Kiton) 슈트를 입으면, 에르메스 버킨 크로커다일 가방을 들면, 절로 어깨가 쫙 펴질 것 아닌가. 여기에다 자신있게 사는 모습이 아름답다는 말까지 들으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심상복 기자(포브스코리아 발행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