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한문학 연구로 인문계 위기 극복하는 김대현 교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김대현 교수

전남대 국문과 김대현(47) 교수의 한문학에 대한 인식은 남다르다. 이미 알려진 고문을 번역하고 가르치는 것 외에 지방의 고문, 특히 문학작품을 발굴해 세상의 빛을 보게 하기위해 그는 최선을 다한다. 그는 호남의 한문학을 연구해서 알리는 것이 한문학에 대한 관심을 일깨우고 발전시키는 첩경이라고 믿는다. 한걸음 더 나아가 인문학을 중흥시키는 '비책'이라는 믿음까지 갖고 있다.

"오늘날 인문학 위기는 학문이 지역문화나 역사를 도외시하고 전국적이거나 일반적인 자료에만 의거해 학생들을 가르치고 학문을 논(論)한데 비롯됐다고 봅니다. 일반인들의 관심이 없으니 현실에서 멀어질 수 밖에 없지요."

김교수가 호남한문학 복원에 정열을 쏟는 이유다.

그는 호남지역 10여명의 한문대가(?)들과 함께 전남대 한문학 연구실을 이끌고 있다. 호남지역에 구전되거나 민가에 보존된 한문학작품을 발굴하기 위해서다. 다만 시기를 너무 길게 잡으면 연구에 한계가 있어 우리시대에 가까운 20세기 한문학작품 개발에 주력한다.

5년전 그가 전남대 교수직을 맡으면서 닻이 오른 이 연구는 현재 850여종의 이지역 한문학 작가의 문집을 목록으로 완성했다.

특히 구례지역에서 발굴된 작품이 많다.

그는 "구한말 애국지사인 황매천선생이 구례에 살면서 나라를 잃은 울분을 시를 지으면서 토로하면서 이 지역에 20세기 호남한시의 중심을 이루게 됐다"고 설명했다.

매천선생이 1910년 8월 자결하기 전까지 이 지역엔 시로서 울분을 달래는 애국지사들의 시사(詩社,시 동호회)가 12개나 있었다. 지금도 구례지역엔 용호정시계와 반천시사, 매월시사등 4개의 시사가 활동을 계속하고 있을 정도로 한문학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이지역 시사연구가인 김정환(광양제철고 국어교사)는 "구례지역은 황매천 선생을 비롯 일제에 항거한 의병장등 수많은 애국지사가 활동했고 현재도 그 후손들이 많이 살고 있어 한시로서 조상들의 유지를 이으려는 문화가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호남지역 한문학작품 발굴은 그 자체가 지역사랑이다.

김교수는 "지난 5년여 동안 심심찮게 많은 지역주민들이 가문에 전해오는 한문작품을 가져와 해석을 부탁해 온다"며 "이런 과정 자체가 한문학이 일반인들 관심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며 진정한 한문학의 존재의미를 찾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실제로 김교수의 호남한문학연구 이후 호남지역 각 초중고에서 한문을 배우려는 학생들이 늘었고 가문이 괜찮다는 집안일수록 집안에 소장중인 고문서에 대한 해독작업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는 것.

호남지역에 유난히 한문문학작품이 많다는 것도 이번 연구를 통해 밝혀진 사실이다.

그는 "이번에 850여 한문학 작품이 발굴됐는데 이는 예로부터 호남이 예향 사실을 입증하는 또 하나의 증거"라고 말했다. 김교수는 그 이유로 넓은 곡창지대에서 나오는 인심과 구한말 초야에 묻혀 사는 우국지사들이 유난히 이 지역에 많았다는 사실을 들었다.

김교수는 또 "현재 호남지역에 남아있는 한문학문집은 3000여종으로 추정된다"며 "이 지역 문학의 특징은 실학적인 분위기와 함께 여성의 삶이 두루 반영돼 있고 자연환경에 대한 찬미, 서정성이 중시된 작품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영남의 경우 성리학의 대가들이 많아 유교관련 작품들이 주류를 이룰 것이라고 추측했다.

지역학문연구가 학문적 차원의 지역감정을 유발하지 않겠느냐는 일부 우려에 대해 김교수는 "지역마다 다른 문학적 풍토가 있었다는 것은 오히려 학문의 폭을 넓힌다는 의미에서 학계에선 두손들고 환영할 일이지 지역감정 운운은 어불성설"이라며 "영남지역은 일찍부터 전통문화에 관심이 많아 대학에 한문학과가 있었는데 호남지역은 어느 대학에도 한문학과가 없다는 점에서 영남지역을 본받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연구과정에서 어려운 점도 적지 않다. 그는 "가장 어려운 문제는 어느 지역에 있을 법안 자료가 실제 확인결과 없을 경우"라고 말했다. 물론 뜻밖에 귀중한 자료를 얻었을 땐 반대로 가장 기쁘고 연구의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또 지금까지 현재 학술진흥재단의 연구비로 자료발굴작업을 해 왔는데 앞으로 이 자료들을 해석하고 체계화 하는데 들어갈 비용이 마련돼 있지 않아 걱정도 많다. 그러나 김교수는 "학자는 열심히 연구에 매진하고 그 과정에서 어려운 점을 그때가서 생각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호남한문학 연구와 함께 제주지역까지 그 연구범위를 확대할 생각을 갖고 있다.

"제주는 오랫동안 호남과 같은 행정구역에 속해있어 문학적 자료가 풍부할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아직까지 체계적으로 자료가 발굴되고 연구된 적이 없는 천혜의 한문학미답지 입니다. 누군가는 이지역 뛰어난 문학작품이 세상의 빛을 보도록 해야 합니다."

김교수는 앞으로도 연구를 계속해 1000여종의 자료를 발굴한 뒤 이를 체계화해 호남한문학을 한학의 한 영역으로 승화시킬 계획이다.

그는 어릴적 서당에서 한문을 공부한 후 정신문화연구원, 성균관대에서 한문학을 공부했으며 중국 상하이 복단대 교환교수등을 거쳐 5년전부터 전남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최형규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