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포폴’, 일부 연예인 사이에서 마약 대용품으로 번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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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 마취제로 쓰이는 전문 의약품인 ‘프로포폴’이 마약 대용품으로 국내 유흥가와 연예계에 퍼지고 있다.

프로포폴은 지난해 팝스타 마이클 잭슨의 사망 원인으로 지목된 약물이다. 마약처럼 기분이 좋아지는 환각 효과가 있고 중독성이 강하다. 과다 투여하면 숨질 수도 있다. 국내에서도 2000년부터 모두 34명이 프로포폴 오·남용으로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는 19일 간호조무사 등 무자격자를 시켜 환각 목적으로 프로포폴을 환자에게 투여한 혐의(의료법 위반)로 성형외과 원장 우모(41)씨 등 의사 2명을 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중국에서 프로포폴 10L를 석유통에 넣어 밀수한 뒤 판매·투여한 간호조무사 전모(28·여)씨와 프로포폴 640병을 판매한 전직 병원상담실장 정모(40·여)씨도 구속 기소했다. 또 백모(36)씨 등 서울 강남 일대의 성형외과·산부인과 병원장 5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우씨 등은 한 병당 가격이 1만원인 프로포폴을 10만~40만원을 받고 환자들에게 투여한 혐의다. 일부 병원은 이를 ‘비타민 주사’라고 선전했고, 경락 마사지 등 불필요한 시술을 끼워 팔았다. 또 세원(稅源) 노출을 막기 위해 진료카드를 쓰지 않거나 현금만 받았다. 수면 마취한 환자의 신용카드를 건네받아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빼내기도 했다.

중독자의 경우 하루 3병씩 맞으면서 매달 2000만~3000만원, 1년에 2억~3억원을 프로포폴 값으로 쓴 것으로 조사됐다. 심한 여성 중독자는 비용 마련을 위해 유흥업소를 다니기도 했다. 일부 의사는 자신이 프로포폴에 중독돼 정신병원에서 여러 차례 치료를 받기도 했다고 검찰은 전했다.

검찰은 프로포폴이 불면증이나 원기 회복에 좋다는 입소문에 따라 연예계와 유흥업계를 중심으로 폭넓게 퍼진 정황을 포착했다. 외국에 비해 통제가 느슨해 웃돈을 주면 손쉽게 프로포폴을 구할 수 있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흥업소 여성 종사자 등 상습 투여받은 사람들이 참고인 자격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일부 연예인이 프로포폴을 맞으러 병원을 찾았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불규칙적인 생활과 과로에 시달리는 연예인들은 수면제 대용으로 프로포폴을 찾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프로포폴을 투여받은 사람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어 연예인은 이번 수사 대상에서 제외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지난달 프로포폴이 강한 정신적 의존성을 유발한다는 의견에 따라 내년부터 향정신성의약품(마약류)으로 지정하기로 결정했다. 검찰 관계자는 “내년에 프로포폴이 마약류로 지정되면 (연예인 등) 상습 투여받은 자에 대해서도 조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철재 기자

◆프로포폴=성형외과 수술이나 수면 내시경 등에서 사용하는 수면 마취제. 오·남용할 경우 사용 자제력을 잃고 강력한 충동과 정신적 의존성을 유발한다. 1992년 국내에 처음 도입돼 외국과 달리 성형외과·치과 등 1차 의료기관에서 직접 사용하는 비율이 높다. 내년에 프로포폴이 마약류로 지정되면 이는 세계에서 처음이다. 의료계 일부에선 프로포폴을 마약류로 관리하는 것보다 양이나 횟수를 제한하자는 의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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