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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칼럼] 사타구니가 축축하고 가려워…성기능 빨간불 신호

중앙일보

입력

이정택 한의사

회사원 H씨(36세)는 최근 발기부전으로 고생하고 있다. 완전히 안 서는 건 아니지만 살짝 발기되었다가 곧 수그러드는 유지곤란 증상 때문에 성관계를 앞둔 상황에서 스트레스가 여간 심한 것이 아니다. 발기부전 증상은 뚜렷한 계기 없이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특이할만한 게 있다면 증상이 나타나기 1년 전부터 낭습이 심했다는 것이다. 물론 피로할 때 술을 많이 마시고 나면 가끔씩 사타구니가 축축해질 때가 있었지만 컨디션과 상관없이 계속 나타나기 시작한 건 그때쯤이었다. 요즘은 가렵고 축축한 정도를 넘어 변색이 되면서 간혹 진물이 나올 때도 있다. 가끔은 발기 문제만큼이나 신경이 쓰이고 괴롭다고 호소하는 H씨였다. 모든 남자가 한 두 번쯤은 반드시 겪게 되는 것이 낭습, 즉 사타구니(서혜부)가 축축하고 가려운 증상이다. 또한 꽤나 많은 남성에게는 반평생 이상 싫어도 달고 살아야 하는 증상이기도 하다. 끈적이는 게 기분 나빠 씻은 후에 선풍기로 말리기도 하고 휴지로 물기 한 방울까지 꼼꼼하게 닦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느샌가 축축하게 변해있는 고간(股間)은 여간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다. 낭습이 지속된다는 것은, 서혜부 주변 조직이 과열되어있다는 의미이다. 정상적인 상태보다 과열되어있기 때문에 땀을 내서 그 열을 체외로 배출하는 것이다. 문제는 조직이 과열되는 원인이 사라지지 않으면 계속 땀이 나서 축축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 있다. 한의학에서는 이 서혜부 주변 조직이 과열되는 이유를 세 가지로 파악했다. 한 가지는 신허(腎虛)이다. 골반강 내 조직이 탄력성과 지지력을 잃고 무력해지면서 순환의 조절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고환과 회음부가 지속적으로 과열되는 것이다. 체질적인 소인이 많이 작용하지만 일반적으로 장기간의 과로 및 노화의 결과로 발생한다. 음낭습양(陰囊濕痒) 혹은 신장풍(腎臟風)이라 부른다. 또 한 가지는 간경습열(肝經濕熱)이다. 이는 서혜부와 성기를 담당하는 족궐음간경(足厥陰肝經)에 염증성 발열이 발생한 경우이다. 전립선, 요도, 고환 등의 급만성 염증으로 인한 경우가 대부분이며, 완선과 같이 진균 번식에 의한 피부 염증도 포함된다. 염증성 발열이기 때문에 통증과 가려움증이 가장 심하게 나타나며, 변색과 짓무름 등의 형태 변화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다른 원인에 의한 낭습보다는 치료 기간이 비교적 짧은 편이지만,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상당히 낭패를 볼 수 있는 경우이기도 하다. 음식창(陰蝕瘡) 혹은 하감창(下疳瘡)이라 부른다. 마지막 한 가지는 산증(疝症)이다. 산증은 다양한 원인에 의해 고환 및 회음부의 정맥과 림프 순환이 늦어지면서 발생하며, 관련 부위의 심한 통증을 동반하기도 한다. 정계정맥류와 탈장이 심화된 경우에 해당하며, 간혹 음낭수종, 고환 혹은 부고환결핵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산증에 의한 낭습은 장기간의 치료와 관리를 요한다. 중요한 점은 세 경우 모두 발기부전과 조루 등의 성기능 변화를 동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허의 경우 보통 발기에 문제가 생기며, 간경습열의 경우 성기능까지 문제가 되면 발기 강직도와 유지능력이 떨어지는 동시에 사정감 통제가 안 되어 조루 증상이 같이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산증의 경우 환자 상태와 산증의 세부 분류에 따라 차이가 큰데, 어느 쪽으든 만성적으로 지속되기 쉽다. 또한 이들 모두 장기간 치료하지 방치할 경우 정자의 생산과 활동성이 떨어져 여성을 임신시키는 생식능력까지 약화될 수 있다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한의학적으로는 세 가지 병증을 감별 진단하여 약물 치료와 침뜸 등의 물리적인 치료 방법을 병행하여 다각적으로 접근한다. 또한 낭습은 피부 외측으로 드러나는 증상이기 때문에 한약재를 원료로 제조한 외용제를 도포하기도 하는데, 일반적으로 고삼, 사상자, 황백 등 살균 작용이 뛰어나고 소양감과 습기를 경감시키는 약재를 사용한다. 낭습은 그 자체로도 불쾌한 증상이지만, 성기능과 생식능력 등 남성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이 위협받고 있음을 나타내는 징후라는 점에서 쉽게 넘길만한 문제가 아니다. 언젠가부터 딱히 무리하지 않아도, 과음하지 않아도 언제나 사타구니 안쪽이 축축하고 가렵다고 느끼고 있다면 무엇이 문제인지 진지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한의사 이정택 이전 칼럼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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