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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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호 29면

디아스포라는 노아(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와 함께 유대인 역사를 상징하는 단어다. 부정적으로 말하면 피치 못할 사정으로 고국을 떠나 타국 땅에서 사는 고난을 말한다. 긍정적으로는 어디에 살든지 유대교 규범을 지키고 고유 생활풍속을 간직하면서 유대인의 정체성을 자랑스럽게 유지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런 정체성이 유대인의 힘이다.

채인택의 미시 세계사

나라를 잃었던 유대인은 중동과 유럽·신대륙은 물론, 중국과 시베리아에까지 흩어졌다. 1934년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은 유대인을 한곳에 몰아넣을 ‘유대 자치주’를 극동 아무르강 북쪽에 만들었다. 남한의 3분의 1쯤 되는 3만6000㎢의 땅에 유대인 1만7695명을 포함한 110만6000명을 살게 했다. 53년 스탈린이 사망하자 유대인들은 새로 건국한 이스라엘로 떠나기 시작했다. 이제는 고작 2000명쯤 남아있을 뿐이다. 인구의 90% 이상이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이다. 하지만 유대 자치주란 이름은 지금도 남아 있다.

유대인은 중국 한복판에도 살고 있다. ‘카이펑(開封) 유대인’이라고 해서 원래 중앙아시아에 살다가 북송(960∼1279)의 전반기 수도였던 카이펑으로 이주한 유대인의 후손들이 아직도 중국에 1000명쯤 살고 있다. 이들은 유교 세상이었던 중국에서 19세기 말까지 수백 년 동안 시나고그(유대인 예배소)를 중심으로 종교공동체 생활을 했다. 명나라 때는 황제로부터 중국식 성을 하사 받기까지 했다. 에즈라는 아이(艾), 시몬은 시(石), 코헨은 가오(高), 길버트는 진(金), 레비는 리(李), 조슈아는 장(張), 조나단은 자오(趙)라는 성을 받았다. 오랜 혼혈로 생김새는 중국인과 구분이 안 될 정도지만 종교와 생활습관은 고스란히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전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사는 것으로 말하면 한국인도 만만치 않다. 외교부의 재외동포 현황통계에 따르면 9개국에 10만 명 이상이 나가 살고 있다. 중국(233만6000), 미국(210만2000), 일본(91만2000), 캐나다(22만), 러시아(22만), 우즈베키스탄(17만600), 호주(13만), 필리핀(11만5000), 카자흐스탄(10만4000명)이다. 1만~10만 명의 동포가 사는 나라도 14개국에 이른다. 모든 G20 국가에 빠짐없이 교민이 있는 나라는 중국과 한국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그야말로 한민족판 디아스포라다.

곧 추석이다. 명절 때 고향에서 가족이 모두 모이는 게 우리네 풍속이다. 귀향·귀성 때 2000만 명 가까이 움직인다. 하지만 머나먼 타국에서 보름달만 바라봐야 하는 해외동포도 수백만 명에 이른다. 월남한 실향민들의 귀향길은 60년째 막혀 있다. 2만여 명의 탈북자도 애달프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연이 있어, 인연이 끊겨 귀향을 못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래도 마음만은 한결같이 고향과 가족을 향하고 있을 게다. 명절 때 고향과 가족을 생각하며 마음을 추스르는 것, 그게 한민족의 정체성이고 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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