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View] 왜 부처님은 주지를 하셨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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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서가 이준승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원장

2년 전 20여 년 넘게 교수직을 고집하던 내가 한 기관의 수장으로 옮긴다고 했을 때였습니다. 많은 지인이 축하와 함께 우려의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교수라는 외롭지만 자유로운 직업에 익숙해진 탓에 한 조직을 이끌어가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충고였죠.

역시 지난 시간은 많은 깨달음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한 조직을 움직이고 좌지우지하는 자리에 있다 보니 기관장으로서 일관성과 원칙을 지키고 있는지 스스로 반문하고 고민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얼마 전 원철 스님의 『왜 부처님은 주지를 하셨을까』를 단숨에 읽고 난 후, 무릎을 쳤습니다. 이 책을 진작 봤더라면 하는 아쉬움과 조직이 작건 크건 간에 좀 더 많은 책임자가 이 책을 읽길 바라는 마음에서였습니다.

원철 스님은 사찰이 아무리 대중이 중심이 돼야 한다고 이상론으로 말하지만 현실은 책임자인 주지를 중심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서 주지학 개론을 꼭 집필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사찰이라는 공간을 책임지는 주지의 역할이 사찰 운영이라는 기능적 차원에서뿐 아니라 종교의 본질적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책에서는 어짊(仁)과 밝음(明), 그리고 용기(勇)라고 규정한 법원 원감 스님의 주지 자질론을 다시 소개하고 있습니다. 도덕성을 갖추고 교화를 하며, 상하를 편안하게 해 오가는 사람을 기쁘게 해주는 것이 인(仁)이요, 제대로 된 사람과 어리석은 자를 살피면서 옳고 그름을 제대로 분별할 줄 아는 것이 명(明)이며, 과단성 있게 일을 처리하고 한번 등용했으면 의심하지 않는 것이 용(勇)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주지의 자질론은 비단 주지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선임자가 돼 누군가를 책임지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이 세 가지 덕목이 얼마나 중요하게 요구되는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뿐 아니라 친인척을 멀리하라, 주변 사람을 잘 관리해야 한다, 대중 뒷바라지가 우선이다,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중도의 주지법, 명예는 마지막까지 떨쳐내야 할 집착이라고 열거한 사례들은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회의 리더들이 이러한 일들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한순간에 무너지는가 생각해 본다면 결코 헛되이 넘길 수 없는 대목입니다.

꼭 어느 조직을 이끌어 나가는 경영자가 아니더라도 후배들 때문에 고민이시라면, 또 나를 돌아볼 기회가 필요하다면 30분 짬을 내 원철 스님의 주지학 개론을 접해 보기 바랍니다.

‘주지가 바로 서야 불교가 바로 선다’는 원철 스님 말씀대로 조직의 장(長)이 바로 서야 조직, 나아가 그 조직으로 구성된 나라 전체가 바로 설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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