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편 보고 가세나] 41. 영화 배급업 (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 군인들에게 영화를 무료로 보여준 공로로 필자(左)는 1980년대 초 3군사령관에게서 감사패를 받았다.

최근 한 지인이 전화를 했다. 동국대 김무곤 교수가 쓴 책에 내 이야기가 나오더라는 것이었다. 무슨 말인가 싶어 책을 구해 읽어봤더니 'NQ'에 관한 내용이었다. 사회가 잘 되려면 '더불어 살려고 하는 정신'(NQ)이 필요하다면서 사례 가운데 하나로 나를 꼽았다. 1996년 탈세 혐의로 구속됐을 때 영화인과 기자들이 나를 옹호하는 탄원서를 검찰에 낸 적이 있다. 그 예를 들며 '평소 얼마나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고 살았는지 알 수 있지 않으냐'는 평을 달았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교수가 그런 평가를 해주니 나로서는 황송할 따름이었다. '과연 내가 그럴 만한 인물인가' '그냥 내 생긴 대로 행동하고 사는데 그게 대단한 일인가' 뭐 그런 생각들이 머리를 스쳤다.

그러고 보니 의정부에서 극장 경영과 배급업을 할 때의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74년 중앙극장이 있는 상가를 인수했을 때 입주 점포는 70개 정도였다. 얼마 뒤 '오일 쇼크'가 왔다. 아랍권과 이스라엘 간 분쟁으로 중동 국가들이 서방에 대한 원유 수출을 크게 줄여버린 것이다. 우리나라도 타깃이 됐다. 석유 값이 폭등하면서 공장이 멈추고 나라 경제가 마비되다시피 했다. 걱정이 돼 상가를 찾았다. 건너편에서 서너 시간이나 지켜봤는데도 정말이지 파리 한 마리 드나들지 않았다. 사무실로 돌아온 나는 점포주들 앞으로 편지를 썼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곁에서 지켜보는 제 마음도 아픕니다. 앞으로 두 달간 임대료를 내지 마십시오. 용기를 잃지 마시라는 제 작은 정성으로 알고 받아주십시오'. 별난 임대업주 다 본다며 고마워하던 광경을 잊을 수 없다.

의정부에는 군부대가 많아 주말이면 외박 나온 군인들로 붐볐다. 이들은 의정부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놀거리가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나는 부대장이 추천한 군인들은 중앙극장에 무료입장하도록 했다. 또 한 달에 한두 번씩 상영이 끝난 영화 필름을 주변 군부대에 보내주기도 했다. 나로서는 큰 돈이 드는 일도 아니었건만 군부대에서 고맙다며 감사패를 주었다. 의정부 시장(현 심대평 충남지사)이 불러 치하한 적도 있었다. 어버이날이나 명절이면 노인들을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고 영화도 보여준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소문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공화당 출신 지역구 국회의원이 나를 손보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다음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선행을 베풀고 다닌다고 누가 누명을 씌운 것 같았다. 공화당 의원이라면 날던 새도 떨어뜨릴 때였다. 극장주 정도야 손끝 하나로 '보내버릴 수 있는' 위치였다.

나는 바로 의원 집을 찾아갔다. 그는 5.16 주역인 육사 8기 출신이었다. "의원님, 저는 배운 것도 없고 이북에서 내려와 연고도 없습니다. 어찌 감히 정치를 꿈꾸겠습니까. 더구나 정치를 하려면 3대(代)가 까발려진다는데 그런 면에서도 저는 구린 데가 많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간곡히 얘기했건만 "자네 행동이 오해를 사게 돼 있지 않나"라며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 뒤 두 차례 더 찾아가서야 가까스로 노여움을 풀 수 있었다. 이후 1년간은 의정부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꼭 갈 일이 있으면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다녀왔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일을 해도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시대로구나'라는 생각에 씁쓸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이태원 태흥영화사 대표

ADVERTISEMENT
ADVERTISEMENT